“당장 직영화를 할 것처럼 발표해놓고 바로 말을 바꾸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7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대책의 하나로 시민의 생명ㆍ안전과 직결된 업무를 직영화하겠다고 발표하자 유성권 서울지하철노조 비정규직지부장은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박 시장의 말이 시민의 답답합을 풀어주기 위한 이른바 ‘사이다’발언임이 금새 드러났다. 윤준병 시 도시교통본부장이 뒤이은 설명에서 “단정적으로 직영으로 간다 말하기 어렵고 직영에 무게를 두고 단계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며 서둘러 수습했기 때문이다.
이날 박 시장이 사고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직영화를 시원하게 약속하고도 뚜렷한 후속 대책 없이 ‘장기 과제’로 슬며시 밀어 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이런 까닭이다.
잠재적 대권 주자로 평가 받는 박시장의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 뿐이 아니다.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강제집행 현장을 갑작스럽게 방문한 박시장은 당시 용역업체 직원들을 향해 “내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더라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다음날 서울시 대변인은 “박시장의 발언은 사업자체를 중단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합의 없이는 더 이상 절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라며 확대해석을 막았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고 90% 이상 철거가 진행된 사업이 박시장의 한마디에 전면 중단됐지만 이후 실제적인 협의는 없는 상황이다. 일을 수습하는 공무원들의 얼굴에 난처함이 역력하다.
앞서 박시장이 대대적으로 발표한 ‘역세권 2030 청년주택’도 마찬가지다. 민간 사업자 수요나 소요예산 등에 대해 서울시의회와 충분한 협의 없이 발표한 탓에 사업 추진을 위한 권역별 설명회가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청년층 표를 의식한 전시행정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박 시장의 ‘사이다 발언’이 잠시 동안의 청량감을 줄 지는 모른다. 하지만 박시장이 광폭의 정치 행보를 시작하면서부터 대중 지지도를 의식한 듯한 즉흥적인 말과 행동이 부쩍 늘어난 것은 아무래도 찜찜한 구석이 있다. 박 시장의 언행에 담긴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유보하고 인기를 얻기 위한 행정이라면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낫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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