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 힘듭니까, 지금은?”(대통령) “(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안행부 2차관) “아! 갇혀 있어서요!”(대통령)
이 대화는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 사고발생 시간으로부터 7시간이 지난 뒤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을 때 대통령과 안행부 2차관 사이에 오간 것이다.
TV로 많은 사람들이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던 사고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대통령의 말은 국민을 당혹시켰다. 유선ㆍ서면 보고가 20차례 이상 올라갔다는 청와대 기관보고의 내용이 과연 사실인지, 그렇다면 대통령이 제대로 된 보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사리에 어둡다는 것인지, 대참사가 예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의 대면보고도 받지 않고 긴급회의도 소집하지 않을 만큼 그가 우선순위를 둬야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등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를 수밖에 없다.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질문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문제의 7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의문을 잠재우기 어려웠던 김 실장의 답변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급기야는 인접국가들의 언론도 민망한 추측에 가담했다.
“대통령의 사생활을 얘기하겠다는 거 아니냐”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초 별로 다 까발리는 게 온당하다고 보나” “대통령의 소재는 안보사항”… 이 말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보고체계와 대통령의 구체적 역할과 관련한 청와대에 자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거나 관련 증인의 채택을 요구하는 야당의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여당의원들이 한 말이다. 과연 여당의 주장대로 대통령의 당시 동정을 사생활의 비밀이나 국가안보사항으로 보고 덮어야 하는 것일까?
대통령에게도 기본권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사생활과 비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통령의 사생활의 범위는 매우 좁다. 대통령은 거의 모든 동정이 공적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공인 중의 공인이기 때문이다. 가령 보통사람들의 건강정보는 민감한 사생활 정보로서 함부로 공개돼서는 안 되지만 대통령의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의 건강상태는 헌법사항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질병으로 인한 직무수행 불능상태는 대통령 권한대행체제로 이행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부도덕한 사생활은 탄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현행 헌법은 직무수행에 관한 위법행위만을 탄핵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생활의 비행은 자체로서는 탄핵사유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 관련 비행 내지 범법행위는 위법한 직무수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또 정치권이 눈감아왔던 위법적 직무수행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결행하게 할 수도 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사례는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통령의 동정은 기본권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사생활의 비밀’도 아니다. 청와대에서 집무를 봐야 할 시간대에 은밀한 사생활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비밀로 보호할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의 신변안전을 위해 비밀로 해야 할 사항도 아니다. 미래의 구체적 동정이 아니라 과거의 행적이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의 대통령 동정의 정확한 공개가 아니라, 오히려 대참사가 예견될 때조차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청와대의 보고체계,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의문스런 행태 내지 상황파악조치 못하는 그의 무능이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지는 대한민국의 국정현실이 아닐 수 없다. 먼 바다도 아닌 근해에서 두 눈 멀쩡히 뜨고 당한 대참사에 대한 국가 심장부의 어처구니없는 대처의 근본 원인과 대통령을 대신해 당시의 상황을 지배함으로써 구조작업을 그르치게 한 자를 정확히 밝히는 것만큼 큰 공익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제대로 작동하는 의원내각제라면 비등하는 여론의 압력으로 내각총사퇴를 초래했을 수도 있는 비극적 인재가 아니었던가.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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