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대형병원 의사가 환자를 성추행해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는 여성들을 성추행한 의사가 구속되는 등 의료인의 성범죄가 잇따르면서 의사들의 윤리의식을 재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부장 김동주)는 서울 강남의 대형병원 내과 레지던트 2년차 김모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5월 직장 수지 검사를 받으러 온 A(23ㆍ여)씨의 주요 부위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검사를 위해 젤을 발라 미끄러졌을 뿐 추행의 고의는 없다”고 혐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현재 서울동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2일에는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는 환자들을 성추행한 의사가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이정현)는 서울 H의료재단 강남센터 내시경 센터장 양모(58)씨를 준강제추행 혐의로 구속했다. 양씨는 2010~2014년 잠이 들어 피해자들이 알아채거나 저항할 수 없는 점을 악용, 주요 부위를 추행하고 신체와 관련된 모욕적인 말을 반복해 여성 간호사들을 성희롱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사들의 증언에 따라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달 검찰에 양씨를 고발했다.
환자의 신체를 책임지는 의료인의 성범죄는 환자들이 전혀 방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기 쉽고, 피해 사실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의료계에선 알려지지 않은 의료인 성추행 사건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 산부인과, 내과, 성형외과 등에서 정상적인 진료의 일환인지 성추행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청진기를 대면서 속옷을 벗게 하고 슬쩍 가슴을 만지는 식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레지던트들끼리 검사를 빙자해 환자의 가슴을 만진 것을 자랑하듯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술 등을 위해 마취하거나 수면 내시경처럼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는 성추행을 당해도 환자들이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불쾌한 경험을 한 피해자가 경찰 등 수사기관에 고발ㆍ고소해도 진료 내용을 녹화한 폐쇄회로(CC)TV 등 범행을 입증할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노영희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는 “진료 도중 의사에게 추행을 당했지만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혐의 입증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해 그냥 입을 다무는 여성들이 많다”고 했다.
의료계 내부의 자정 노력과 함께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일부 의료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개인들의 자정 노력에만 기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 등 해외에서 문제를 일으킨 의사 자격을 박탈하는 것처럼 시스템을 갖춰 환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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