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엔 재판관 8명 중
‘합헌’ 4명 vs ‘위헌’ 4명
위헌 정족수 6명 못 채워 합헌
여성부는 낙태죄 폐지 의견
헌재 이번엔 판단 바꿀지 주목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감행한 여성과 의사에게 형벌 부과는 헌법에 반하는가에 관한 격론이 헌법재판소에서 불붙었다.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뒤 6년 만이다.
24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 논쟁 대상은 ▦임부가 낙태했을 때 1년 이하 징역 내지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형법 269조1항 ▦의사나 한의사ㆍ조산사 등이 임부 동의를 얻어 낙태했을 때 2년 이하 징역형을 규정한 같은 법 270조1항의 위헌 여부였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태아의 생명권 인정 대목 등을 둘러싸고 청구인 측과 법무부 등 이해관계인이 팽팽한 공방을 주고 받는 공개변론이 진행됐다.
청구인 측은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뒷전일 수 없는, 헌법상 기본권이라 강조했다. 대리인 김광재 변호사는 “현행 낙태죄는 사실상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임신 초기 등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면서 모자보건법상 허용 예외를 뒀지만 그 범위가 좁아 합법 낙태는 사실상 강요된 선택을 받는 여성에게만 국한된다고 지적했다.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돼 임부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얘기다.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질환이 있을 때’ ‘강간 또는 준강간 등에 의한 때’ 등 사유가 있으면서 ‘임신 24주 이내’일 때만 낙태를 허용한다.
청구인 측은 의존적 존재인 태아를 생명권 주체로 인정할 수 없기에 사람의 생명권과 달리 일정 부분 제한될 수 있고, 따라서 임부 자신의 결정권과 건강권 등이 더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법무부 등 이해관계인 측은 태아도 생명체로 보호 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이해관계인 측은 “태아는 8주만 돼도 중요 장기가 형성되고, 16주가 되면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태아는 단지 심장소리로 살아있음을 증명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 허용 범위는 모자보건법 개정이라는 입법권자의 재량으로 조정될 수 있는 것이고, 낙태죄 자체를 쉽게 위헌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태아 생명권에 아무런 보호조치가 없어져 또 다른 위헌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낙태죄의 실효성 여부를 두고도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청구인 측은 낙태죄로 연간 10여건만 재판에 넘어가는, 사실상 낙태죄 사문화 현실을 지적했다. 이해관계인 측은 “낙태 처벌이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효성이 없는데 현실에서 문제가 되느냐”는 취지의 재판관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청구인 측 차혜령 변호사는 “그렇다 해도 안전한 낙태를 받을 기회가 차단돼 있다”며 “태아 성장 상태를 고려해 덜 위험한 시기에 안전한 수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에서 숙련의에게 수술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어 건강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낙태죄 폐지로 낙태가 급증하지 않겠느냐는 재판관 물음에 청구인 측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성 요청에 따라 허용하는 국가에선 오히려 낙태비율이 더 낮다는 통계 수치를 들었다. 2010년 기준 독일의 낙태비율은 6.1%였고, 원칙적 금지 국가인 뉴질랜드는 18.2%였다. 청구인 측은 독일처럼 임신 12주 이내에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헌재는 이날 공방 내용을 토대로 본격 심리에 돌입한다. 헌재는 2012년 8월 낙태죄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재판관 8명은 합헌 4명 대 위헌 4명으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으로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성가족부가 낙태죄 폐지를 담은 의견서를 내는 등 정부 기조가 폐지 쪽에 힘을 싣는 모양새라 6년 전 헌재 판단이 뒤집힐지 주목된다. 지난해 10월 23만명이 넘는 낙태죄 폐지 찬성 의견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실린 점도 고려될 수 있다. 이진성 헌재 소장 등 재판관 6명이 낙태죄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인사청문회에서 밝히기도 했다. 헌재 결정은 이 소장 등 5명이 퇴임하는 9월 전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다만, 2012년 때는 공개변론 뒤 결정까지 9개월이 걸렸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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