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그 해 11월29일~12월1일 코미디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것이다.연예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서보고 싶어하는 그 무대. 무명이던 1972년 여름, 가수 남 진(南 珍) 쇼를 이끌던 단장에게 “못생긴 게 어디 남 진 쇼 사회자 자리를 넘보느냐?”며 발길질을 당한 곳이 바로 세종문화회관(옛 서울시민회관) 앞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수십 차례 서류를 만들어 신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회관측의 거절 사유가 진짜 코미디였다.
‘코미디언이 무대에 서면 공연의 질이 떨어진다’ ‘카펫이 더러워진다’. 그리고는 “관장에게 직접 물어봐라” “시장에게 부탁해봐라” 하면서 서로 미루기만 했다.
그런데 내 공연을 해본 후에는 그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오페라 가수 공연 때보다 수입도 많지, 손님 질도 높지….
공연 제목은 ‘이주일의 울고 웃긴 30년’이었다. 나의 연예계 생활을 축소해 뮤지컬로 보여준 공연이었다.
무명 시절 고생한 이야기, 유명해지고 나서 벤츠를 타고 멋을 내며 방자하게 살았던 이야기, 정치에 입문한 사연, 가족에게 생긴 슬픈 일 등을 아무런 거짓없이 솔직히 보여줬다.
아내 역은 탤런트 전원주(全元珠)씨가 맡았다. 나를 스타덤에 올린 ‘수지 Q’ 춤도 마음껏 선보였다.
3일 5회 공연에 2만 여 명이 찾아왔다. 첫 회에는 암표가 등장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통로에 보조의자까지 놓아야 했다.
자리 정리하느라 낮 공연이 1시간30분 이상 지연되자 문제가 생겼다.
오후7시30분부터 시작하는 저녁공연을 보러 온 관객과 한 데 엉켜 세종문화회관 일대가 난장판이 된 것이다. 이들이 몰고 온 자동차로 교통 체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부종합청사나 시청에 다니는 고위 공무원들이 퇴근을 하다 이 난리를 보고 무슨 일인가 알아본 것이다.
평소 이주일 공연에 관심을 두지 않다가 그제서야 표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세종문화회관에 표를 구해달라 아우성을 친 모양이다.
그래서 회관에서는 2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2층 VIP 룸을 그냥 내줬다. 대통령이 앉는 자리였다.
문제는 공연 전 내가 그 자리에 평소 신세 진 사람들을 초대하려 했는데 회관에서 안 된다고 했던 것이었다.
결국 내 VIP는 통로에 앉아서 공연을 봤다. 이튿날 공연 도중 내가 한마디 했다.
“여러분, 이주일 공연에 대통령께서 오셨습니다.” 공연장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VIP룸에 있던 양반들은 고개를 숙이고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나의 조롱은 계속됐다. “여러분,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정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이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를 위한 것입니까? 돈 내고 온 놈은 3층에서 망원경으로 봐야 하고, 저기 저 분들은 10원 한푼 내지 않고 대통령석에 앉아 편히 공연을 보는 게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여기저기서 “역시 이주일”이라는 연호와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 마지막 날 이번에는 회관측에 따끔하게 한마디했다. 물론 공연도중 ‘생방송’ 멘트를 통해서다.
“여러분, 이 세종문화회관이 처음에는 ‘카펫이 더러워진다’며 제 공연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공연 후에 카펫을 고쳐주려 했는데 망가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지금 생각해도 그날 멘트는 후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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