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권영길 내세운 2002년 대선 '빈부격차 해소·재벌개혁' 공약
무상시리즈 등 차별화로 호응 불구 NL계 주도권 잡으며 뒷전으로 밀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진보 정치가 단단하게 자리매김하려면 국민들의 실생활을 향상시키는 정책 개발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이 서민ㆍ복지 중심 정책으로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냈듯 ‘정책 정당’으로서 보수 정당과 경쟁해야만 생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민노당이 초창기에 선도적으로 내놓았던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은 보수와 중도 진영을 불문하고 거대 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제시하는 주요 공약이 됐다.
민주노동당 초창기 정책의 명암
노동ㆍ시민사회 등 여러 사회운동 세력이 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ㆍ농민ㆍ서민을 위한 사회복지’를 지향하면서 한국 정치권에선 선도적인 민생 복지 정책을 내놨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정책을 참고하고 시민사회ㆍ노동계의 현실을 반영한 공약들이 첫 선을 보인 것은 권영길 후보를 내세운 2002년 대선이었다. ‘무상교육ㆍ무상의료ㆍ무상급식’을 일컫는 ‘3무(無)’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부유세 및 기초연금제 등 진보적 공약은 타 후보들과 뚜렷이 구분됐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권 후보의 슬로건도 대중적인 유행어가 됐다. 당시 민노당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정치권은 87년 민주화 후에도 여전히 ‘민주 ㆍ반민주’대결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10년 이상 눌려온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와 IMF를 거치며 생활이 피폐해진 서민들의 불만이 팽배했던 시기에 민노당이 본격적으로 삶과 직결된 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정책에 대한 지지는 이어 열린 2004년 총선에서 표심으로 나타났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구호 아래 2002년 대선 공약을 다시 내세운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노당은 정당투표에서 13.1%를 득표해 국회의원 10명(지역구 2명, 비례8명)을 당선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 정책 개발의 주역은 ‘영원한 정책실장’으로 불린 고 이재영씨와 김정진 변호사 등이었다.
하지만, 민족해방(NL)계가 2004년부터 민주노동당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당의 면모는 달라졌다. 정책 행보는 뒷전으로 밀리고 국가보안법 철폐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등 반미 성향의 이념 투쟁에 당의 역량을 쏟아 부은 것이다. NL계의 당내 패권 장악 과정에서 정책 개발의 주역들도 하나 둘 당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민노당에서 당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당 차원의 정책은 2004년 이후 거의 실종됐다”며 “정책개발 풀도 전문인력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약화됐고 당의 관심사도 정책보다는 이념과 당권으로 옮겨갔다. 당에 박사급 인력이 10명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일심회’ 사건연루자 제명건을 두고 당이 분열하면서 정책통들 대부분이 당을 떠났고 NL계만 잔류하면서 당의 정책은 더욱 앙상해졌다.
무상시리즈 등 거대 정당의 공약 ‘계승’
당을 장악한 NL계들이 등한히 했던 민노당의 초기 복지정책들은 10여년이 지난 후 거대 정당들에 의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 등은 여ㆍ야를 불문하고 선거 때마다 중요 공약으로 채택돼 승패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
민노당의‘무상급식’ 공약은 2010년 6ㆍ2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의 공약으로 부활했다. 당시 야권이 공통 공약으로 내세운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는 결정적 계기였고, 진보 성향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는 요인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가 공히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채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대선 후보로서 내세운 ‘고교 과정 전면의무교육 실시’와 ‘기초노령연금제’ 역시 민노당이 발표했던 정책이다. 군 복무자들을 상대로 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매달 30만원 사회복귀지원금 지급’공약과 박근혜 후보의 ‘사병월급 40만원까지 인상 검토’ 공약도 이미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제시한 ‘사병 월급 현실화’와 궤를 같이 한다.
민노당의 정책이 빛을 보게 된 것은 사회 전반에 복지에 대한 요구가 점증하는 동시에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가계소득 증대의 필요성이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성과에서 보듯 진보정치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반미 이념 투쟁에 골몰했던 NL계의 노선에서 탈피해 다시 민생 정책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NL계가 장악한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외려 진보 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정희 외대 교수는 “앞으로 소득ㆍ지역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정당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2000년대 이후 민노당이 이념적 진보가 아니라 정책적 진보로 갔어야 했는데 가지 못했고, 선거 전략도 야권연대나 단일화에 기댔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전 민노당 대변인은 “일자리ㆍ복지 등 진보적 아젠다를 가지고 구체적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만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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