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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흐려질 때 대비 미리 계약, '임의후견제' 이중 안전장치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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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흐려질 때 대비 미리 계약, '임의후견제' 이중 안전장치 강점

입력
2015.10.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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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감독원 선임해야 효력 발생

다른 것보다 자기결정권 충분 보장

60대 여성 K씨는 제법 재산을 모았으나 가족이 없었다. 미혼인 그는 이복 형제들과 겪은 가정 불화로 망상 증세가 있어 약물 치료를 받는 등 심리마저 불안정했다. 얼마 전 정년 퇴임한 그를 가장 불안케 한 것은 평생 모은 재산이 법적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복형제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속앓이를 하던 그는 가정법원을 찾아가 ‘성년후견’ 신청을 하려 했다. 그러나 법원 가사조사관은 K씨가 뚜렷한 정신이상 증세가 없어 성년후견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가사조사관은 “훗날 판단력이 흐려질 때를 대비해 가장 믿을 만한 친척이나 지인과 후견 계약을 맺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결국 K씨는 신상보호는 물론, 사후 재산을 형제 가운데 친언니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후견 계약을 맺은 뒤 심적 안정을 되찾았다.

K씨는 성년후견제 중 ‘임의후견’ 계약을 맺은 경우다. 임의후견은 본인이 나중에 치매 등으로 판단력이 흐려져 일상생활과 사무처리를 하기 힘들 때를 대비해 정신이 멀쩡할 때 특정인과 당사자 간 후견계약을 맺는 것이다. 미리 자신의 의사로 직접 계약을 해두는 일종의 ‘후견 보험’으로, 공증 뒤 법원에 등기신고만 하면 된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의사 표현에는 지장이 없는 G(48)씨도 최근 “어느 날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 된다”며 친언니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공증절차를 마쳤다.

도입 3년째인 임의후견 제도는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해, 연간 신고 건수가 7, 8건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치매 등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는 이미 정신에 제약이 생겨 돌이킬 수 없을 때 청구되는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 특정후견보다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사무총장인 구숙경 법무사는 “사전에 스스로 본인이 곤경에 처하거나 가족 간 불화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임의후견 계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부모가 정해둔 후견인이 따로 있기만 해도 자식들이 나이 든 부모를 학대하거나 방임하기 힘들다”며 “자기 결정권을 스스로 확보해야 심각해지는 노인학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후견제도에 비해 이중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도 임의후견의 강점이다. 당사자 간 후견계약을 맺고 등기신고를 했더라도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정신에 제약이 생겼을 때 법원이 임의후견 감독인을 선임해야만 한다. 감독인이 선임되기 전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고, 감독인이 선임돼 후견이 개시된 이후에는 임의로 철회할 수 없다. 법원이 후견계약 종료 심판을 해야만 계약이 종료된다.

임의후견 계약도 악용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계약 당시 정신이 멀쩡해야 하는데 실은 이미 치매 증상이 나타난 이후 계약을 맺은 경우,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치매 증상을 보인 어머니와 임의후견 계약을 맺으면서 특약으로 모친의 부동산을 자신에게 증여하도록 한 딸이 등기신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인 선임을 법원에 청구한 사례도 있다. 이를 알게 된 오빠는 여동생을 상대로 후견인 해임 청구를 했고, 결국 가족 간 송사로 이어졌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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