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습니다. 9일 오후 7시 3분부터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맞는 첫 번째 주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행정부 수반 역할을 하게 되고 정부는 ‘비상 체제’를 가동했습니다. 그리고 여의도도 이번 주말 또 한 번 분수령을 맞이합니다. 집권 여당 새누리당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 지 그 방향이 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 탄핵에 최소 20명의 친박(박근혜)계 의원들이 참여하며 철옹성 같던 친박 진영에 금이 가기 시작한 상태에서, 야당과 함께 박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비박계는 당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당의 주도권을 비박계가 잡고 환골탈태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탄핵에 반대한 56명을 비롯해 친박은 여전히 당의 절반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상태에서 쉽사리 당의 주도권을 비박에게 넘길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비박에게 당의 운전대를 맡길 경우, 친박의 구심점인 박근혜 대통령도 없는 상태에서 벼랑 끝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2월의 두번째 일요일인 11일 비박계 의원들 모임인 ‘비상시국회의’가 회의를 열어 앞으로 활동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임의 간사 역할을 하고 있는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친박계가 당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준다면 (그들에게도) 공간이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큰 충돌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일촉즉발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이 상황은 꼭 1년 전 12월 두 번째 주말에도 똑같이 벌어졌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의 한 축을 맡고 있던 안철수 국민의당(당시 새정연 전 대표) 의원이 탈당을 한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11일 금요일로 돌아가 보면, 안 의원과 가까운 송호창 전 의원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안 전 대표와 장시간 얘기를 나눴다”며 “안 전 대표가 탈당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안 전 대표가 지난 6일 혁신전당대회 개최를 마지막 제안이라면서 재차 촉구했지만 문 전 대표가 다시 거부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이미 상황은 끝난 것 아니냐”고 덧붙였는데요. 문재인 당시 대표와 혁신전대개최 등 당 운영과 관련해 다른 입장을 내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결단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던 안 전 대표가 결단을 내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은 발칵 뒤집혔죠. 주류(친노), 비주류(비노)로 갈려 아슬아슬한 동거가 이어졌던 제1야당이 20대 총선을 불과 넉 달 앞두고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당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결국 중진들이 안 전대표의 탈당을 말리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고 박병석ㆍ원혜영 의원이 12일 토요일 저녁 안 전 대표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문 전 대표가 두 의원의 연락을 받고 직접 안 전 대표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설득은커녕 만남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문 전 대표는 최근 당시 상황을 전하며 “(안 전 대표 자택에) 갔을 때 원혜영, 박병석 의원 두 분도 집 밖에 나와계셨다”며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전했는데요. 이튿날인 13일 일요일 안 전 대표는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안 전 대표는 “이대로 가면 총선은 물론 정권교체의 희망은 없다”면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밝혔는데요. 안 전 대표와 문 대표는 기자회견 직전까지 통화를 하면서 마지막 담판을 시도했지만, 문 대표는 안 전 대표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문 전 대표로서는 안 전 대표의 제안은 단순히 안 전 대표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당 운영과 총선 공천 방식 등에 불만을 가진 비주류 진영 인사(박지원ㆍ김한길ㆍ호남 지역구 의원)들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안 전 대표의 제안은 결국 비주류 진영의 자기 공간 넓히기 차원으로 해석했기 때문인데요. 반면 안 전 대표로서는 다음 대선 출마를 노리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와 한 지붕 아래에 있는 상황에서 당내 경선에서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문 대표가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당 운영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따로 살림을 차리기로 결심을 한 것이죠. 당은 아수라장이 됐고, ‘내년 총선은 사실상 끝났다’는 전망이 많았죠. 일부에서는 “두 초선 의원이 당권ㆍ대권 욕심에 분열 정치를 조장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당시 14일 월요일 한국일보 1면 제목이 ‘떠난 남자, 남은 남자… 야권을 찢다’ 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죠. 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의당’이라는 새 집을 짓고 전국에 녹색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예상을 깨고 총선에서 정당지지율 2위, 의석수 38석이라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문 전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새 간판을 달았고, 표창원 의원을 비롯해 깜짝 인사 영입 작전으로 당의 혼란을 멈추게 하고 당 운영 권한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넘겨주면서 2선으로 물러났고 총선 기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외곽 지원을 통해 총선 1당 등극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두 사람 다 야권의 대표적인 대선 후보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과연 새누리당의 비박과 친박은 어떤 선택을 할 지 그리고 그 선택은 국민들에게 어떤 판단을 받을 지. 12월 두 번째 일요일은 정치권의 또 하나의 분수령을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두 번째 일요일이 그랬던 것처럼요. 그건 그렇고. 안철수 전 대표는 11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엽니다. 꼭 1년 전 12월 두번째 일요일에 탈당 기자회견을 했던 그가 이날은 또 어떤 정치적 제안을 할 지 주목됩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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