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면 단순한 모양새의 집과 강고한 인상의 나무들이 서 있다. 제주도로 귀양간 추사를 위해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단아한 느낌의 집으로 높은 정신적 경지를 나타냈으며 소나무와 잣나무로 변함없는 의리를 표현한 것이다. 쓸쓸한 귀양살이에도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고 학문과 예술에 정진한 인품이 드러난 명작이다. 파킨슨병 환자에게도 세한도 속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다.
파킨슨병을 진단받는 순간, 환자들은 ‘무슨 잘못으로 이 병에 걸렸을까, 이제 곧 일어나지도 못하고 치매로 인생을 비참하게 마무리할 것이다’라는 비통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적의 약물치료를 받으며 관리하면 천수를 누리고 계획했던 일을 이루며 살 수 있다. 그러면 갑자기 내 인생에 들이닥친 파킨슨병, 고독감과 비참함을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좋은 약이고 다른 하나는 운동이다. 파킨슨병 치료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다. 약효를 내는 메커니즘에 따라 대여섯 계열로 나뉘고 각 계열에 속하는 서너 가지 약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떤 약으로 치료를 시작하고, 어떤 약을 조합하고, 용량은 어떻게 하고, 생활 리듬에 따라 달라지는 복용법 등 무한한 가짓수의 치료법이 있다.
같은 약, 같은 용량이라 해도 환자마다 약효와 부작용이 다르다. 게다가 파킨슨병이 서서히 진행하므로 그에 따라 약도 맞춰가야 한다. 환자에게 맞는 최적 최고의 약물치료를 끊임없이 찾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치료를 시작하고 5년이 지나면 약효가 소진돼 더 이상 치료가 안 된다는 말에 불안해 하는 경우가 많다. 과장된 표현이니 너무 겁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효과는 좋고 부작용은 최소화 하는 약과 수술기법도 개선되고 있으며, 근본 치료를 목표로 새 치료법도 개발되고 있다.
요즘 봄 꽃이 예쁘다. 환자들이 ‘올해는 이렇게 꽃잎 날리는 길을 걷지만, 내년 봄을 맞이할 때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걱정한다. 병이 서서히 나빠진다는 것을 환자가 가장 두려워한다.
어떻게 해야 진행을 늦출 수 있을까? 정답은 운동이다. 걷고 체조하고 운동해야 한다. 이는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파킨슨병 진행을 늦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거나 지팡이 짚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안 나간다는 핑계로 운동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30분이라도 걷고 TV를 볼 때도 스트레칭하면 좋다.
영국 의사 제임스 파킨슨이 자신이 관찰한 파킨슨병 환자들에 대해 발표한 것이 200년 전 1817년이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병의 원인을 밝히는데 많이 발전했고, 머지않아 더 근본적인 치료법도 찾을 것이다. 파킨슨병을 이겨내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이 마음 속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그 날을 기다렸으면 한다. 의사와 함께 최적의 치료를 찾고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운동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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