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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돈 물고 다닐 정도로 호황 → 포경 금지로 쇠락 → 문화특구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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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돈 물고 다닐 정도로 호황 → 포경 금지로 쇠락 → 문화특구로 부활

입력
2018.04.20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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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르네상스/울산 장생포]

고래의 고향, 장생포의 역사

장생포 옛마을에 조성된 지폐를 물고 있는 진돗개 조형물. 고래어업전진기지였던 옛 장생포는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울산남구 제공
장생포 옛마을에 조성된 지폐를 물고 있는 진돗개 조형물. 고래어업전진기지였던 옛 장생포는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울산남구 제공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 조성된 장생포 옛마을 입구에는 지폐를 문 개를 표현한 조형물이 있다. 이는 1980년대 이전 장생포가 동북아 최고의 고래어업전진기지로서 돈과 사람이 몰리는 ‘파시’로 호황을 누렸음을 의미한다.

장생포 고래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암각화에는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선사인들이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후 러시아 태평양 포경회사가 1899년 태평양 일대에서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장소로 장생포항을 선정하면서 한국의 대표 포경기지로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장생포 사람들은 고래잡이를 주요 생업으로 삼았고, 미국ㆍ영국ㆍ러시아ㆍ노르웨이ㆍ청ㆍ일본인들이 드나들던 국제적인 포경항으로 성장했다. 이때부터 장생포는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부의 도시로 통하기도 했다.

미국의 동물학자 앤드류(Roy Chapman Andrews)는 1912년 장생포를 방문, 1년간에 걸쳐 한국계귀신고래를 연구해 ‘태평양의 고래’라는 논문에 울산과 장생포의 한국계귀신고래를 소개하기도 했다.

러ㆍ일전쟁에서 승리해 우리나라 포경업을 독점한 일본은 1915년을 전후로 함경도, 강원도, 경남의 거제에 있던 포경기지가 정비, 장생포는 포경업의 중심으로 더욱 부각됐다.

장생포는 광복 이후 조선포경회사가 50톤급 낡은 목조 포경선 두 척으로 우리나라 근대포경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이후 1970년대까지 해마다 밍크고래를 1,000마리 이상 포획할 정도로 고래의 황금어장으로 각인됐다. 그러나 무차별 포경으로 고래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국제적으로 상업 포경을 금지, 장생포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에 울산 남구는 2005년 고래박물관을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특구 개발에 나서 2008년 7월 25일 장생포 일원 164만㎡에 대해 국내 유일의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받아 고래포경에서 고래문화관광으로 기수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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