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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더욱 험준해질 동북아 안보지형

입력
2016.05.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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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전략적인 아시아 행보

트럼프의 미국도 혼란 가중될 것

외교안보 패러다임 다시 생각해야

며칠 전 베트남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0년 이상 계속됐던 베트남과의 무기금수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1995년 수교 이후 이미 두 명의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화해의 길을 닦았지만, 과거 두 나라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던 구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베트남 정부가 그 대가로 미군의 재주둔을 허용한 캄라인만(灣)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전투기와 수송기, 병력 집결지 등으로 사용했던 전략요충지다. 동맹국도 아닌, 더구나 공산당 일당체제가 굳건한 나라에 미국이 이런 대담한 군사협력을 한 예가 또 있었을까 싶다. 40여년 만에 적국이 아닌 우방으로서 다시 실현된 미군의 베트남 주둔을 두고 “고통스러운 전쟁의 기억을 지웠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오바마의 순방 메시지도 비슷하다.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것이지만, 모든 관심은 히로시마의 원폭 평화기념공원 방문에 맞춰졌다. 원폭 희생자들을 기리는 평화공원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면서 자신의 ‘핵무기 없는 세상’을 강조했다. 그러나 원폭투하 행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은 일절 거부한 단순한 추모방문으로 원폭의 비극적 의미가 제대로 구현될 리 없다. 일본의 피해자들 사이에 ‘사죄’ 논란을 부추기고, 한국과 같은 일본 식민지배 피해국들로부터는 일본의 전쟁책임에 눈을 감았다는 비판을 불렀을 뿐이다.

베트남과 일본은 베트남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적으로 싸웠던 나라들이다. 파격과 논란을 부르면서까지 오바마가 두 나라에서 예민한 외교행보를 감행한 이유는 자명하다. 미군이 다시 주둔하게 될 캄라인만은 베트남과 중국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를 안고 있다. 대양해군을 주창하는 중국의 해군력 팽창에 맞서 베트남은 오래 전부터 미국에 무기금수조치 해제를 요구해왔다. 대중국 봉쇄라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아니고는 두 나라의 군사적 밀착을 설명하기 어렵다.

히로시마도 마찬가지다. 숱한 비판을 초래하면서까지 평화공원 방문을 강행한 것은 안보 파트너로서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과거사 멍에를 덜어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미국의 원폭 사죄로 해석해 전쟁책임을 희석시키는 명분으로 이용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아베의 외교 업적으로 치켜세우며 평화헌법 개정 등 안보우경화를 더욱 밀어붙일 태세다. 지난해 이란핵 협상을 타결하고, 3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한 데 이어 아르헨티나에서 과거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오바마의 행보를 두고 ‘역사순례’라는 말이 나온 게 얼마 전이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그의 외교 유산에 대한 이런 평가는 칭찬이자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베트남과 일본에서의 역사 여정만큼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동북아 안보지형에서는 여전히 역사보다는 전략적 이익이 우선시되는 엄혹한 현실을 보게 된다.

지금 미국 대선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아시아 외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에게 외교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뱉은 말을 보면 동북아 안보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주한미군 철수도 거침없이 거론한다. 심지어는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 전쟁을 벌여도 미국과는 상관없다는 투다. 트럼프의 이런 ‘신고립주의’를 두고 중국은 자신의 안보공간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심 반기고 있다. 일본도 미일동맹의 뿌리째 뒤흔드는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군사재무장을 통해 안보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우익의 목소리가 병존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점점 진영화(陣營化)하고 복잡하게 분출되는 안보현실을 우리가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점이다. 북한의 파상적 대화제의에 대한 대응 논란에서 앞으로 닥쳐올 검은 파고의 징후를 느낀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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