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90%가 활성단층서 발생
美ㆍ日뿐 아니라 이란ㆍ印尼까지
책자ㆍ온라인 정보로 피해 대비
한국은 졸속 추진했다가 폐기
20~30년 걸리는 장기 과제
동남부권부터 당장 조사 나서야
12일 경주 5.8 지진과 19일 4.5 여진을 계기로 체계적인 방재 대책 마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지진 발생 우려가 있는 국내 활성단층 지역을 파악하고, 지도로 만드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30년 가까이 소요되는 장기 과제지만 이번 지진을 한반도의 마지막 경고로 여기고 미래 세대를 위해 당장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주 지진 피해조사단원으로 지난 13일 현장조사에 참여한 김영석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진의 90%가 활성단층에서 발생하는 실정이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은 활성단층 지도를 만들어 대비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도 진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활성단층이란 단층의 나이가 적어 활동 가능성이 크고, 지진 발생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은 곳을 말한다. 미국과 일본은 주요 활성단층 지역을 책자로 만들거나 온라인을 통해 국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활성단층의 존재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과 맞닿아 있다. 4월 한국과 가까운 일본 구마모토(熊本)현(경주와 직선거리 380㎞)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7월에는 울산 동쪽 해역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일어났고, 불과 두 달 뒤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일어나는 등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대규모 지진 발생 주기가 최근 들어 짧아지고 있다. 다른 피해조사단원인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경주 지진은 지하 15㎞의 깊은 지역에서 발생해 지표가 갈라지는 등 큰 피해가 없었지만, 만약 지표 가까이에서 발생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경주 지진은 한반도가 우리에게 전한 마지막 경고”라고 강조했다.
일단 활성단층 지역이 집계되면 단층대 주변에는 고층건물이나 원자력발전소 등 국가 주요시설 건설을 제한하고, 꼭 필요한 경우 내진 설계를 강화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해외에서는 활성단층 지역에 공원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손문 교수는 “지진 자체는 막을 수 없더라도 이란이나 인도네시아 등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국가도 하는 일을 손 놓고 있다는 것은 안전불감증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활성단층 파악 시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990년대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활성단층 지도 조사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과거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이 2009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활성단층지도 조사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을 의뢰해 2012년 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졸속이라는 전문가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본보 19일자 1면) 있다. 지헌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센터장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추진해야지, 단시간 내에 성과를 내려는데 급급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활성단층대를 조사하기 위한 예산은 연간 40억원으로 추정된다. 제대로 활성단층 지도를 만들려면 최소 20~30년 가까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한 번에 전 국토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산, 울산, 경주 등 지진이 빈번한 동남부권을 우선 조사하고, 차차 확대해 나가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활성단층 조사는 기본적으로 땅을 깊이 파서 단층의 나이 및 최근 활동 여부를 파악하는 식이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한국은 국토 대부분이 개발돼 건물이 들어선 곳이 많고, 사유지 등을 민간이 조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해 예산과 인력을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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