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신인들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가 있다. ‘새내기 괴롭히기’를 뜻하는 ‘루키 헤이징(Rookie hazing)’ 행사다. 신인 선수는 정규시즌 막판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선배들이 지정한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채 비행기를 탑승하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특정 인종과 성별, 국적을 상징하는 복장은 내년부터 금지될 전망이다.
ESPN은 14일(한국시간) “이제 야구 선수가 원더우먼이나 치어리더로 변신하는 걸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메이저리그가 새 노사협약에 따라 약자(신인)를 괴롭히던 관습을 없애기로 했다”고 밝혔다.
폴 미프서드 메이저리그 부회장은 “루키 헤이징이 우리가 볼 때는 민감하지 않은 것이라도 사회적으로는 잠재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불쾌감을 줬다”며 “여장(女裝)하는 건 누군가가 흑인 분장을 한 뒤 단지 우리는 장난으로 옷을 갈아입은 거라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여장은 그 동안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도 피할 수 없었다. 강타자 브라이스 하퍼(워싱턴)는 여자 체조선수로, 올해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은 신인 시절 팝스타 레이디 가가로 분장한 채 길거리를 다녀야 했다.
여장은 금지하지만 모든 의상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 ESPN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슈퍼 히어로 복장은 괜찮다”며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의 케첩 병, 장칼로 스탠턴(마이애미)의 수구 선수 복장 등이 그 예”라고 소개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들도 루키 헤이징을 피하지 못했다. 박찬호(은퇴)는 LA 다저스 데뷔 첫해인 1996년 라커룸에 걸어 둔 양복이 모두 난도질 당하는 신고식을 치렀다. 당시 박찬호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관례라는 것을 알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2013년 다저스 류현진(29)은 ‘고스트버스터즈’의 유령인 ‘마시멜로 맨’으로 변신해 웃음을 자아냈고, 올해 김현수(29ㆍ볼티모어)는 텔레토비가 됐다. 오승환(34ㆍ세인트루이스)은 슈퍼 마리오의 동생 ‘루이지’로, 최지만(25ㆍLA 에인절스)은 일본의 민속경기 스모 선수 복장으로 나타났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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