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한 도심에 활력 취지 불구, 마을의 내력·사연은 도외시
인공적 눈요깃거리 조성 급급, 골목마다 쓰레기·소음에 신음
선진국은 주민이 사업 주도, 회의 참여·의견수렴에 최우선
“저 바비큐집 가 봤어요? 해산물, 고기 종류 가리지 않고 바비큐로 먹는 집인데….” 지난 28일 오후 6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와 이어지는 종로구 내자동 금천교 시장을 찾은 직장인들의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했다. 2012년 음식문화거리로 지정하면서 먹자골목으로 탈바꿈한 50년 역사의 재래시장은 평일 이른 저녁인데도 북적거렸다. 300m 남짓한 골목길 양쪽으로 110여개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권은 활력이 넘쳤다. 하지만 시장 옆길로 바로 연결된 주택가인 종로구 체부동 주민들은 불만이 많았다. 체부동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윤모(72)씨는 “동네가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취객만 많아지고 생활은 불편해졌다”며 “이런 식으로 이득 없이 유명세만 치를 바에는 차라리 재건축 아파트를 짓는 옛날 도시 개발이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 재개발 등 물리적 환경 개선 중심의 도시 개발이 한계를 맞으면서 도시재생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1980년대 영국에서 산업구조 변화로 급격히 쇠퇴한 글래스고 등 구 산업도시를 중심으로 처음 시작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은 쇠퇴한 도심의 경제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사회ㆍ환경 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2002년 도시재생특별법을 제정한 일본의 영향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도시재생사업단을 꾸려 국가 연구개발(R&D)사업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 왔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국토교통부는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을 지정했고, 서울시도 도시재생 선도지역 27곳을 선정했다. 벽화 그리기, 녹지 조성, 주민회의 활성화 등의 도시재생 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만만찮은 부작용이 뒤따른다. 경제 활력과 지역공동체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취지와 달리 이미 도시재생을 통해 관광명소로 떠오른 전국 각지는 거주민의 불만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내방객이 늘고, 빠르게 상업화되면서 주거비, 임대료 상승 등 거주 환경 악화로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ㆍ슬럼가의 고급도시화) 현상은 최근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금천교 시장을 포함하고 있는 종로구의 대표적 재생마을인 세종마을(서촌)만 해도 그렇다. 3.3㎡ 기준 월평균 임대료가 2009년 7만~8만원 정도에서 15만원까지 뛰었고 땅값은 3.3㎡ 기준 3,000만~4,000만원 정도에서 6,000만원대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건물주와 세입자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가게도 여럿 된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이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들이 이면도로로 쫓겨났다.
관광화 사업으로 도시재생이 이루어진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도 거주민의 불만이 불거져 나온다. 월미도에서 가깝고 차이나타운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놀이동산에 온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마을 전체에 갖가지 세계 명작동화에 나오는 오즈의 마법사, 백설공주 등 동화 캐릭터를 골목 벽화, 벤치, 가게 조형물 등의 형식으로 덧씌워 놓았다. 이곳 주민들은 동화마을 조성으로 상권이 형성돼 만족해 하는 이가 있는 반면 맥락 없이 동물과 캐릭터로 뒤덮인 데 대해 불만도 많다. 주민 김모(54)씨는 “관광객이 불쑥 대문을 열고 들여다 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씁쓸해 했다.
‘한국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경남 통영의 벽화마을인 동피랑마을도 관광객이 몰리면서 끊임없이 쓰레기 무단 투기와 소음, 주민 사생활 침해 논란을 겪고 있다. 형형색색의 지붕으로 유명한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역시 사회적 기업운영을 통한 관광 수익 창출로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꼽히지만 비슷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물론 도시재생 과정에 젠트리피케이션 등 부작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박태원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유기체가 외부 침투 세포에 대해 항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진통”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선진국 도시재생의 예를 보면 지역환경을 고려한 사업방향과 함께 주민 참여나 주민 주도 등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막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에서는 도시재생을 시작할 때 탁아시설부터 마련한다. 경제적 부담으로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주민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협의 과정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다. 민간의 의견을 세밀하게 챙기다 보니 도시재생 모범사례로 꼽히는 보스턴의 개발사업은 10년 넘게 걸렸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장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 활성화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잘못 제어하면 지역이 다 타버릴 수도 있다”며 “각 지역에 맞는 도시재생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의 경우도 솔숲 사이로 보이는 달의 운치 때문에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역사 문화적 맥락을 도외시해 원주민의 불만을 사고 있는 케이스다.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는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인천 지역이 2012년 말부터 원도심 활성화를 내걸면서 관광 활성화에 적극 나섰는데, 인공적인 시설물로 눈요깃거리를 만드는데 치중하고 있다”며 “역사와 사연이 있는 마을을 동화로 분칠한 천박한 도시재생”이라고 쏘아붙였다.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생 주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 6월 성동구가 입법 예고한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는 눈여겨볼 만 하다. 도시개발 과정에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책임에 바탕을 두고 ‘주민협의체’가 구역 내 상권을 보호하고,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게 했다. 신혜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가 원주민 유출 등 도시재생의 부작용을 이제 막 인식한 만큼 단기간에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인천=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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