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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손상·암·류마티스 고통에…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 年 200명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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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손상·암·류마티스 고통에…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 年 200명 넘어

입력
2015.08.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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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 자살 1942년 합법화, 전문병원 4곳… 1곳만 외국인 받아

생명 경시 논란에도 美 20개주서 안락사 입법 추진

英은 하원서 지원안 내달 심의, 佛 시한부 환자의 선택권 인정

허용 범위 넓히려는 움직임 확산

영국인 자매 타라 오레일리 베이커(40)씨와 로즈 베이커(29)씨는 지난달 17일 특별한 파티를 열었다. 어머니 재키 베이커(59)씨의 ‘존엄사’를 위한 모금 파티였다. 올 2월 사고로 신경손상 장애를 갖게 된 어머니는 “더 고통 받기 전에 편안히 죽길 원한다”는 뜻을 밝혔고, 자매는 어렵사리 이를 받아들였다. 자매는 안락사가 불법인 자국을 떠나 스위스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 위해 8,000유로(약 1,050만원)의 비용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타라씨는 “처음엔 어머니의 결정에 화나고 겁났지만 지금은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어머니를 고통에 시달리게 두고 싶지 않다”고 텔레그래프에 털어놨다.

이달 14일에는 폐암 진단을 받은 영국인 남성 밥콜(68)씨가 스위스에서 안락사했다. 파킨슨병을 앓던 부인이 이곳에서 안락사한 지 18개월 만이다. 앞서 3일에는 간호사 출신 영국 여성 길 파라오(75)씨도 “늙는 것이 끔찍하다”며 스위스로 가 안락사를 택했다.

이처럼 안락사와 조력 자살이 합법인 스위스로 ‘자살 관광’을 떠나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출신까지 포함해 한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스위스로 향하는 중이다. 이를 두고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통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긍정적 의견이 있는 반면, 생명 경시 풍조와 자살 남용을 부추긴다는 비판 목소리도 거세다.

스위스 원정자살 한 해 200여명, 매년 증가

스위스는 1942년부터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합법화 해왔다. 법은 ▦본인이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제 3자의 압력이 없으며 ▦장기간 죽기를 원해온 사람을 돕는 것을 허용한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스위스 형법은 의사가 처방한 치사약을 반드시 ‘본인이 직접’ 복용하는 것만 허용하고, 의사를 포함한 제3자가 먹여주는 행위는 금한다. 115조는 자살을 하려는 이들을 ‘이기적 목적으로’ 돕는 사람은 최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스위스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 4곳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인을 받아주는 곳이 ‘디그니타스’ 병원이다. 콜 부부와 파라오씨가 안락사한 병원이기도 하다. 디그니타스에 따르면 1998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1,905명이 이곳에서 안락사했다. 이 가운데 스위스 거주자는 156명뿐이고 다른 국적자들이 1,749명에 이른다. 이들의 국적은 다양한데, 가장 많은 것은 독일인으로 920명에 달한다. 영국(273명) 프랑스(194) 이탈리아(79) 미국(51) 오스트리아(39) 캐나다(36명) 이스라엘ㆍ스페인(24명) 네달란드(10명) 등이 뒤를 이었다. 싱가포르와 홍콩과 같은 아시아 출신도 각각 1명씩 포함됐다. 디그니타스 병원에서 설립 당해 시행된 안락사는 6건에 불과했지만, 2003년 100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04건을 기록했다.

연령대와 이유도 다양하다. 디그니타스 병원의 설립자 루드비히 미넬리 원장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하루는 독일 뮌헨에서 택시를 타고 300㎞를 달려온 90대 노파가 병원을 찾았고 그 다음날은 20대 젊은 남성이 ‘당장 죽고 싶다’고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간암과 췌장암으로 힘들어하다 디그니타스를 찾은 에드워드 도네스와 조안은 입원 당시 각각 85세, 74세였고, 훈련 중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럭비 선수 다니엘 제임스는 23세였다. 스위스 취리히대가 201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경손상으로 인한 장애’(370명)였으며 암(227) 류마티스질환(140) 심혈관질환(93) 정신질환(10) 순이었다.

‘디그니타스’ 조력 자살 절차는

디그니타스를 찾는 사람 모두가 안락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이 정해놓은 일정 절차에 따라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 절차는 우선 일정 가입비와 연회비를 내고 디그니타스 회원으로 등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의료 진료 기록과 함께 본인이 삶을 포기하려는 이유를 자필로 정리한 문서를 병원에 제출한다. 수 차례 곱씹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라는 취지다. 디그니타스 의사들은 이 문서들을 검토한 뒤 치사약을 처방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승인이 되면 디그니타스 측과 안락사 날짜를 조율하고 숙지해야 할 사항들을 전달 받는다. 모든 절차가 완료되면 의사와 신청자는 약속한 날짜에 병원이나 병원 소속 인근 주택에서 만남을 갖는다. 의사는 여기서 60㎖ 정도의 물에 펜토바르비탈나트륨 15㎎을 섞어 당사자에 주고 직접 복용케 한다. 동석한 디그니타스 직원은 이 모든 과정을 비디오 카메라로 기록한다. 비용에는 ▦가입비 및 연회비 227유로(약 30만원) ▦치사약 처방비 2,400유로(약 317만원) ▦승인 후 준비비 2,400유로 ▦상담비 800유로(약 105만원) ▦화장비 1,600유로(약 210만원) 등이 포함된다.

디그니타스는 매년 10만유로 가량을 각종 법적 분쟁에 쓸 만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인권 변호사 출신인 미넬리 원장은 안락사와 조력 자살 허용법이 꼭 유지돼야 할 세가지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우선 누군가에게 자살과 관련해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주게 되면 그가 실제로 자살에 나설 확률이 오히려 크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미넬리 원장의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이 최종 승인을 결정한 이들 중 80%는 결국 안락사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넬리 원장은 또 조력 자살이 실제로 많은 이들의 정신ㆍ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고 있으며, 투신자살이나 약물복용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할 확률을 낮춰준다고 주장한다.

비판 거세지만 안락사 찬성 늘어

스위스가 외국인의 안락사나 조력 자살을 돕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할 수 있는 데다 자칫 취약계층 환자나 불치병 환자가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안락사 반대 단체인 ‘케어낫킬링’은 “대부분 국가가 안락사를 금지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은 빈곤층과 장애인, 노인,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죽음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바로네스 이로라 핀레이 영국 카디프대 교수도 BBC에 “법 제한 없이 의사들이 최종 결정자가 되면 안락사 결정이 너무 쉬워질 수 있다”며 “일반인들이 생명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랑하는 이의 안락사를 지켜본 가족이나 지인들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10여년 전 스위스에서 안락사하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본 한 독일 남성은 가디언에 “어머니를 말리지 않은 게 후회 된다”며 “사랑하는 이가 고통 받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 한 선택이지만, 그를 어렵게 떠나 보내던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이들의 안락사를 허용해주어야 하느냐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건강하지만 노화하는 게 싫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택해 디그니타스에서 숨진 여성 파라오씨가 대표적이다.

현재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를 비롯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소수다. 미국은 오리건주 등 5개주와 캐나다 퀘백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허용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등 20여개 주에서 안락사 허용 입법을 추진 중이다. 영국은 다음달 하원에서 안락사 지원법안을 심의할 예정이고, 프랑스 하원은 올 3월 시한부 환자가 연명치료를 포함해 음식 및 수분 공급 등을 모두 중단해 생명을 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올 6월 식물인간 상태인 프랑스인 뱅상 랑베르(38)씨에게 인위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유럽 인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를 통해 15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력 자살을 허용해야 하냐’는 질문에 찬성이 우세한 국가가 러시아 포르투갈을 제외한 13개국에 달하기도 했다.

의학전문 변호사 찰스 포스터는 법학 전문지 ‘저널 로’에 “찬반 의견 모두 존중해야 하지만 이들 논리의 한가지 공통점은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이라며 “스위스가 자국민 외에도 외국인 원정자살을 끌어 안으려거든 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승인 절차를 보다 체계화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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