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사령부가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 시스템을 배치할 가능성이 있는 장소들이 있다”며 “장래 (사드) 배치에 대비해 적절한 장소를 찾기 위한 비공식 조사가 진행됐다”고 그제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주한미군이 사드 배치를 염두에 둔 부지 조사를 공식 언급한 건 처음이다. 우리 정치권이 사드에 대한 전략적 접근방식을 놓고 홍역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미군이 느닷없이 한국 배치를 마치 기정사실화하듯 보도자료를 낸 속내가 지극히 의심스럽다.
더욱이 사드 배치에 관해 미국과 아무런 공식 접촉이 없었다는 청와대의 논평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이런 발표를 낸 것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반박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 이후 새누리당 등 정치권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공론화 요구가 분출하자 11일 “미국으로부터 요청 받지도, 협의한 적도, 결정된 것도 없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이 이번처럼 사드 배치와 관련한 종잡을 수 없는 발언으로 우리 정부를 혼란스럽게 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미군이 한국에서 부지조사를 실시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가 나오자 며칠 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본국에 배치를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촉발했다. 지난달에는 제프 폴 미국 국방부 공보담당관이 “이미 한국 내에서 부지조사를 마친 만큼 한국과 비공식적으로 사드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방한 중이던 데이비드 헬비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는 이에 대해 곧바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논의한 바 없다”고 발을 뺐다.
미국이 북한 핵ㆍ미사일 대응, 주한미군 보호, 아시아 미사일방어(MD)체계 완성 등 자신들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는 조급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사드는 단지 미국만이 아닌 한국의 안보 외교에도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중대한 문제다. 이를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배려나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국내 여론은 물론, 한미동맹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거듭 천명하는 마당에선 더욱 그렇다. 만약 리퍼트 대사 피습 이후 국내 일부의 대북강경 분위기에 편승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것이라면 더더욱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재연기와 관련해 반대급부로 사드 배치가 거론돼 온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직시해야 한다.
다음달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의 잇단 방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 또 어떤 사인이 나올지 우려된다. 미국은 더 이상 사드 배치와 관련한 불필요한 오해가 증폭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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