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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기업 사정은 對美 투자를 늘린다?

입력
2015.03.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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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포스코의 미국 투자가 늘 것 같다. 깃발이 올라간 집권 3년차 사정의 첫 대상인 포스코 수사를 보며 든 생각이다. 엉뚱한 얘기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만도 않다. 사정당국이 칼을 휘두르면 엉뚱한 쪽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세상인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기업 비리를 자국 법으로 자국에서 단죄할 카드가 많이 있고, 그 적용은 이른바 제이워킹(무단횡단) 단속과 다르지 않다. 무단횡단 단속이 경찰 판단에 맡겨진 것처럼 기업 비리를 단속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업이 사전에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투자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일이다. 국내 한 글로벌기업 오너의 가족 신상과 재산내역, 의심스런 해외송금, 출국 일지 등의 공문서들이 미국 당국에 넘어갔다. 사정당국이 해외 선까지 동원해 대기업을 압박한 것인데, 결국 이 대기업은 두 손을 들고 당초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세금을 냈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해당 기업은 정부에 낸 징벌적 세금보다 서너 배 많은, 백악관조차 반길만한 돈을 미국에 투자했다. 얼마 뒤 미국 당국 조사에 대응한 이 기업 내부 팀도 흩어졌다.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은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공교로운 일들이 반복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포스코는 김영삼 정부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 주기로 잡음, 외압, 비리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이번 수사도 그 연장선에 있다. 새 정권이 오면 등장인물만 바꿔 리메이크 되는 수사드라마가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결과가 아닐지 걱정이 앞서는 까닭이다. “엄청난 비리가 드러나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경고도 예사롭지는 않다.

비리를 수사해 단죄하는 건 사정당국 본연의 일이지만, 이번 사정에서 우려되는 건 포스코의 경우만이 아니다. 사정이 이전에 비해 좀 이상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과거 사정을 담당했던 인사들의 평가도 있다. 사정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앞선 것 같다는 의심들인데, 그런 의심을 짙게 하는 정황은 많다. 정치권 선언이 있고 나서 사정기관이 동원되는 수순을 밟는 것도 그렇다. 대통령이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말하자,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사정 관련기관들이 죄다 모여 사정 분야를 정해 공개하는 이상한 이벤트를 가졌다. 국무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자 다음날 검찰이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 한 것도 매한가지다. 시중에서 수사지휘권이 있는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보다 청와대의 민정수석을 더 주시하는 것은 이번 사정의 또 다른 이상한 면이다. 그가 대통령이 마음에 들어 하는 방식의 수사를 주도할 것이라는 얘기 역시 많다.

청와대가 사정 깃발을 올린 지금은 사정기관이 손을 대면 그만큼의 깊이로 우리사회 검은색이 드러날 것 같은 분위기다. 역대 정권들은 취임 초에 이전 정권과 선을 긋는 이런 사정 작업을 했다. 정치권력이 정국장악이나 정책집행을 위해 사정기관을 이용하고, 사정기관이 권력의 칼이 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수사가 대미 투자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사정은 살필 일이 많아졌다. 더구나 2년이나 늦춰진 이번 사정에서 이전 정권 비리를 찾아낸다고 해서 박수 받기는 쉽지 않다. “또 이상득이고, 또 박영준이냐”는 반응이 더 많을 것이다. 남 탓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은 내 살을 베어야 박수 받을 수 있다. 3년 뒤 정권교체 이후 나올 수 있는 포스코 수사드라마를 미리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5년 전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던 것만 지금 수사한다면, 지금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것은 언제 수사하겠는가. 권력만을 바라보고, 권력자 마음만 헤아렸다가는 혹리(酷吏)였던 장탕(張湯)식 사정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태규 사회부장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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