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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 '영등할망'을 아시나요?

입력
2016.03.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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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이 들어서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제주에서는 겨울과 봄의 전환기인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 부른다. 실제로 바람의 신(神) 영등할망이 제주를 찾을 무렵인 2월 초부터 중순까지 제주의 바다는 특히 험난하다. 심지어 이 기간 소라나 전복 등 어패류는 속이 텅 빈 껍질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영등할망이 조개류의 속을 다 까먹어서 그렇다고 여겼다.

영등할망이 머무는 기간에는 금기시하는 일도 많다. 이 기간에는 해녀의 물질을 비롯해 바다에서의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농사일, 집안일 등도 무척이나 조심했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인다거나 곡식을 심으면 흉년이 든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영등할망이 바다를 휘저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다. 영등할망은 제주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씨를 뿌려주어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풍요의 신이기도 했다. 따라서 섬사람들은 영등할망이 제주에 머무는 기간에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굿을 했다. 영등굿이다.

영등할망은 2월 초하루에 한림읍 한수리를 시작으로 제주바다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름날 우도를 거쳐 떠난다고 전해진다. 이 기간 해안마을 곳곳에서 굿을 하는데, 환영제와 송별제로 구분할 수 있다.

영등신을 배방선에 띄워 보내는 약마희 의식
영등신을 배방선에 띄워 보내는 약마희 의식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된 제주시 칠머리당의 경우 음력 2월 1일 영등환영제, 14일 영등송별제가 행해진다. 환영제 때는 어부와 해녀 등 영등 신앙을 믿는 이들만 모여 간소하게 지내는 반면 송별제 때에는 많은 주민과 관광객이 모여 하루 종일 큰 굿판이 벌어진다. 영등할망이 떠나는 우도와 인근 마을인 온평리 등지에서는 음력 2월 15일에 굿이 열린다.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초하루를 전후해 날씨가 맑고 화창하면 ‘옷 벗은 영등할망이 왔다’, ‘할망이 딸을 데리고 왔다’라고 말하고, 반면 날씨가 궂으면 ‘우장 쓴 영등이 왔다’거나 ‘할망이 며느리와 함께 왔다’라고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예로부터 고부간 보다는 모녀간의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제주 영등굿은 조선조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소개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기록에는‘2월 초하루에 제주의 귀덕 김녕 애월 등지에서 영등굿을 했다’고 전한다. 귀덕과 김녕 등지에서는 나무장대 12개를 세워 놓고 신을 맞아 제사를 했고,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영등신을 배에 태워 보내는 약마희(躍馬戱)로 신을 즐겁게 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파했는데 이를 연등(燃燈) 혹은 영등이라고 한다는 내용도 있다.

예전에는 제주도 중산간을 포함해 해안가 마을에서 행해졌다고 하나 현재는 주로 해안가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해안마을의 경우도 과거에는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굿이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어부와 잠녀를 위한 굿으로 변해가고 있다.

마을의 신당에 모셔지는 신들이 항시 머무는 토착신인데 반해 영등할망, 영등신은 외지에서 찾아온 내방신으로서 풍우신, 풍농신, 어업신, 해신, 해산물증식신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영등굿은 바람 많은 섬 제주에서 그것도 북서계절풍이 특히 심하게 불어오는 음력 2월 초에 잠시 물질을 멈추고는 한 해의 풍요를 기원했던 마을공동체 문화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계절의 흐름을 미리 알고서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선인들의 지혜까지도 담고 있다.

강정효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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