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준 기자

등록 : 2017.05.09 04:40
수정 : 2017.05.09 04:40

"유재석을 대통령으로"… 연예계다운 ‘투표 바람’

이병헌 정우성 등 "표현의 자유 지키자" 투표 독려 나서

등록 : 2017.05.09 04:40
수정 : 2017.05.09 04:40

제19대 대통령선거에 대한 연예계의 관심도 뜨겁다. 배우 이병헌(왼쪽부터), 고소영, 정우성, 한지민 등 스타들이 이례적으로 투표 독려 캠페인에 나섰다. 한지민은 바라는 새 지도자상으로 "국민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을 꼽았다. 김영준 스튜디오 제공

“유재석 대통령으로 뽑아달라” 속 반전

“유재석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세요.” 누군가의 권유에 배우 서지혜는 “예?”라고 놀라며 “좋은 분인 건 알지만 그건 좀...”이라고 주저한다.

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 독려 캠페인 ‘0509 장미 프로젝트’ 홍보 영상에서는 뜬금없이 배우 장동건과 봉준호 감독, 나영석 PD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그들의 지인인 배우 고소영과 이서진이 “말도 안 된다”며 콧방귀를 뀌는 모습이 담겨 웃음을 자아낸다. 인물이 호감이라고 해서 이미지로만 대통령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담긴 풍자다. 정책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영상의 콘셉트는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등을 제작한 여운혁 전 MBC PD의 아이디어다. 반어적 표현으로 투표의 중요성을 일깨운 방식이 2008년 미국 대선 때 진행된 ‘돈트 보트(Don’t Vote)’ 캠페인 영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줄리아 로버츠, 톰 크루즈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투표하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인 뒤 역설적으로 한 표의 소중함을 보여줘 큰 반향을 일으킨 이벤트다. “1표? 그걸로 뭐할 건데?”라고 비꼰 뒤 “2000년 선거에서 537표가 결과를 바꿨다”(해리슨 포드)며 유권자를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민간이 주도한 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 독려 캠페인 ‘0509 장미 프로젝트’ 홍보 영상 한 장면.

블랙리스트, 촛불… 투표 여부 밝히기조차 꺼리던 스타들의 변화

19대 대통령선거에 대한 연예계의 관심이 어느 해보다 뜨겁다. 올해엔 고소영, 이병헌, 이서진, 정우성 등 스타들이 직접 나서 투표 독려 캠페인 영상까지 찍었다. 30명이 넘는 유명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투표 참여에 같은 목소리를 내기는 처음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 이뤄진 프로젝트라는 점도 뜻 깊다.

이 뿐이 아니다. 지난 4일과 5일 온라인에는 연예인들의 사전 투표 인증사진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가수 이문세, 윤종신과 보아 그리고 그룹 소녀시대 멤버인 서현을 비롯해 배우 김소연ㆍ이상우 커플, 여진구, 윤균상, 임수정 등 다양한 세대의 연예인들이 사전 투표소에서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높아진 정치적 관심과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이 연예계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다. 투표 독려는 정치적 행위로 비쳐 많은 연예인이 투표 참여 여부조차 입 밖에 내기를 꺼리던 때도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 호소가 익명의 소수에 반감을 불러 ‘안티’를 낳고, 연예 활동에 큰 걸림돌이 된 피해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딛고 연예인들이 투표 참여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나선 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크게 작용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드러난 검열행위의 반작용으로 제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연예인들이 많아져 생긴 변화다. 촛불집회 이후 그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0509 장미프로젝트’에 참여한 배우 A의 소속사 대표는 8일 “블랙리스트 문제를 지켜보며 분노했고, 절망했다”며 “투표 참여 독려는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이번 선거가 워낙 중요하기에 투표 독려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올라 느닷없이 홍역을 치른 배우 정우성은 투표 독려 홍보 대사가 된 모양새다. 화려함을 뽐내야 할 ‘훈남 배우’는 투표 도장 문양이 새겨진 단출한 회색 티셔츠를 입고 최근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정우성은 “국민이 어떤 시기는 필요 때문에 상실을 선택했지만, 이제는 상실된 것을 되찾겠다는 의지 그리고 이런 여정을 앞서서 이끌어줄 사람을 리더로 기대하는 것 같다”며 “투표는 이를 실현할 첫걸음이고, 우리 생활과 밀접한 것이기에 주인의식을 갖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소신을 전했다.

열렬히 투표 독려에 나서고 있는 스타들이 새 대통령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한지민은 “국민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을 꼽았다. 블랙리스트 파문이 나라를 뒤흔든 시국에 정치적 성향과 상관 없이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고,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다.

지난 4일과 5일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에 참여한 연예인들. 어느 해보다 연예인들의 사전 투표 열기도 뜨거웠다. 사전 투표 단체 참여도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무한도전'·윤종신 등 SNS

‘사전 투표 단체 참여’ 잇달아… 투표를 축제로

이틀 동안 무려 1,100여 만명이 투표소를 찾은 사전 투표 열기를 반영하듯, 올해 대선에는 연예인들의 ‘사전 투표 단체 참여’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방송인 유재석 박명수 등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진을 비롯해 배우 김지석 이하늬가 나오는 드라마 ‘역적’과 임시완, 윤아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7월 방송)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경북 문경 등 각 촬영지 인근 투표소를 찾아 선거했다. JYP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올해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은 그룹 트와이스 멤버인 나연, 정연, 지효도 9일 각 주거지의 투표소를 찾아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정치적 보복(블랙리스트)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문화 창작자들의 투표 참여 바람에 큰 동력이 된 것 같다”며 “(사전 투표 단체 참여는)경직된 선거 문화를 축제처럼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의미를 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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