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강행 백태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
노조위원장 직인 강탈해 찍기도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조 연맹
공대위 복원… 국회 앞 농성키로
지난 1일 오전 9시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보훈병원) 관리이사와 행정지원실장 등 간부 6명이 보건의료노조 보훈병원지부 김석원 지부장이 사는 서울 길음동 아파트로 우르르 몰려왔다. 2시간 동안 집요하게 초인종을 누르면서 김 지부장한테 성과연봉제 도입에 합의해줄 것을 요구하던 이들은 황급히 달려온 지부 간부 2명이 강하게 항의하자 그제서야 되돌아 갔다.
지난달 18일 한국중부발전 서울화력본부 운영실장은 출근하자마자 “오늘도 서명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다들 나와 일하기 싫은 모양”이라며 노골적으로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 동의 서명을 강요했다. 보령화력본부 2발전소 간부들은 군에 입대한 직원들까지 찾아가 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조는 이들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 관할지청에 신고했다.
공공노련과 공공연맹, 금융노조(이상 한국노총),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이상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 공공부문 5개 산업별 노조 연맹이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대표자를 상대로 노사 합의를 강요하거나 직원에게 동의서 서명을 강제하는 등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들이 강압적 행태를 보였다고 폭로했다.
이들에 따르면 기관들의 위법 행위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취업규칙을 불법으로 변경한 경우다. 집단 동의 절차 없이 성과연봉제 도입 안건을 이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의결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보훈병원과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중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고용정보원, 부산항만공사 등 8곳이 근로기준법을 어긴 기관으로 꼽혔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을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바꾸려면 노동자 과반이나 과반수 노동자가 속한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인천항만공사와 예금보험공사, 한국감정원, 한국동서발전 등 4곳은 노사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조 동의를 압박하거나 노조 투표 과정에 개입하는 등 위법을 불사한 정황이 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가령 인천항만공사는 노조원 투표(2일)에서 동의 안건이 부결되자 경영진이 노조를 찾아가 합의를 종용하면서 경찰이 올 때까지 사무실에 위원장을 사실상 감금하고, 위원장이 떠난 뒤 사무국장을 협박해 받아낸 직인을 도용해 ‘사기 합의’를 했다고 단체들은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 두 노총 공공부문 노조는 공동대책위원회 복원도 선언했다. 이에 따라 11일부터 공기업 성과연봉제 도입 시한인 다음 달 말까지 공대위 지도부가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간다. 6월 18일에는 서울에서 5만명이 모이는 노동자 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후에도 정부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계속 압박할 경우 9월 중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게 공대위 계획이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의 자율경영을 보장하는 공공기관운영법을 위반하고 직권을 남용한 데다 각 기관에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들도 진두 지휘하고 있다”며 “공대위 차원에서 기재부 장관을 형사 고발하기 위해 법리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낙하산 사장을 향해 줄 세우기 경쟁을 시켜 등급을 매기는 해고연봉제ㆍ강제퇴출제는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며 “총선에서 확인된 국민의 뜻에 따르는 투쟁을 본격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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