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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일하는 이들이 당당한 사회

입력
2017.01.0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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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 정초부터 민주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과 성숙의 척도는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권리를 향유하며 스스로의 삶을 주인으로서 꾸려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 ‘어떤 민주주의인가?’라고 하는 물음은 ‘어떤 일자리인가?’라고 하는 물음과 사실상 일치한다. 민주적 산업사회에서 일자리는 모든 시민들이 스스로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한 장이요, 보다 큰 행복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물적 기반을 갖추게 하는 수단이자 통로다. 발전한 민주사회에서 일자리는 사회구성원들이 향유하는 행복추구권의 시발점임과 동시에 그 사회의 민주주의 완성을 이루는 장이기도 하다. 민주적 권리의 완성은 일자리 기회를 개인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향유할 수 있고, 일자리를 영위하는 가운데 얼마나 당당한 시민으로 존재하느냐에 있다.

나는 2000년대에 독일에서 지낼 당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부터 신선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독일 사회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 어디에서, 그 어떤 일을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 매우 당당하고 자부심이 넘쳐 있었다. 그 어떤 고객도 함부로 ‘갑질’을 하기 어려운 기세였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이들조차 그 당당함이 솟구쳐, 마치 손님이 주문을 하기 위해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할 정도처럼 느껴졌다.

일자리를 영위하는 주체들이 당당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또 일의 과정 전반을 온전히 숙지,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당당할 수 있으려면 그 배후에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제들이 잘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독일 사회를 생각해 보면, 그러한 기제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직업훈련을 이수하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많은 변화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독일에서 ‘일(Arbeit)’은 ‘직업(Beruf)’을 의미하며, 직업은 반드시 소정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여 체계화된 교육훈련을 거친 뒤 취득 가능하다. 직업인이 되는 것은 그 사회가 누군가에게 사회적으로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라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며, 그것을 부여받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디에서나 ‘작은 전문가’로서 높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된다.

둘째, 일하는 이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사회적 제도와 노동법의 규율 및 집행체계가 잘 발달해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법률이 작동하는 배후에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존엄을 존중해 주는 사회적 인식이 교육을 통해 넓게 공유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법을 어기면 법적 판단 이전에 높은 사회도덕적인 비용을 치러야 한다.

셋째, 직업인들은 홀로 외로이 있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사회적으로 든든한 조직체 내지 결사체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앞서 두 가지 요소가 국가의 개입이라면 이는 사회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는 노동조합과 직업협회 등 다양한 중간조직체들이 발달해 있다. 국민들 모두 자유롭게 결사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한 조직체들은 구성원들의 이해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공익 저해도 불사하고 국가와 부정의한 결탁을 자행하는 식으로 ‘막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전반의 신뢰자본을 증진시키고 책임성 있게 공익을 실현해 가는 주체로 존재한다.

촛불의 성취를 통해 진정 일하는 이들이 당당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되기를 꿈꿔본다. 올해는 그 방법으로 위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또 강화하는 것에 국가와 사회 모두 에너지를 쏟았으면 한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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