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9일 닷새 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베이징을 거쳐 귀국하면서 “북한도 현 상황에 대한 긴박성과 위험성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선중앙통신은 “북한과 유엔이 왕래를 통한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원론적 수준의 내용이지만, 북한이 과거 유엔 고위급 인사 방북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던 것에 비춰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 수용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최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후 “핵무력 완성”을 공언하고 잇단 대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를 통해서도 미국에 대화 의사를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북한이 미국과 자국의 안전보장에 대해 대화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말께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방북도 점쳐진다. 앞서 북한 올림픽위원회 관계자들은 바흐 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스위스 로잔을 방문한 바 있다. 마침 미국의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대화의 조건으로 ‘60일간 도발 중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혀 북미 간 물밑 접촉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대화 제스처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미국의 대화를 수용한다는 뜻으로 보기는 어렵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자신들의 강화된 핵 입지를 바탕으로 협상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공세의 성격이 짙다. 미국에서 선제공격과 같은 강경 발언이 쏟아지고, 대북제재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는 고립상황을 우선 벗어나 보자는 의도다. 대화 신호를 보내는 한편으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나 대형 잠수함 건조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 것도 북한의 진정한 대화 의지를 의심케 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최근 다시 백두산에 올랐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투쟁의 근거지이자 김정일의 출생지라고 선전하는 백두산은 김정은이 과거 중요한 정치적 고비가 있을 때마다 올랐다. 2013년 장성택 숙청 직전에, 2014년에는 김정일 유훈통치를 벗고 본격적인 김정은 체제 출범을 앞두고 백두산에 간 적이 있다. 이번 그의 백두산 방문은 ‘핵무력 완성’과 맞물려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전례 없이 강해지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모종의 전략적 선택을 고심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북한의 대화 신호는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핵 포기 없는 대화는 ‘대화를 위한 대화’에 불과하다. 진정한 생존의 길이 무엇인지 김정은이 백두산에서 바른 교훈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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