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고사는 내신ㆍ수능 3~6등급 수준, 즉 수험생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대입 전형입니다. 적성고사 폐지안을 무효화 해주세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두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 수능 위주 전형 확대 등 굵직한 사안 못지 않게 최근 들어 ‘적성고사 폐지’ 여부가 뜨거운 쟁점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적성고사는 주로 수도권 중위권 대학이 수능과 같은 범위에서 객관식 문제를 자체 출제해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전형으로, 수시에서 학생부 평가와 적성고사 성적을 가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9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9학년도 대입에서 가천대, 한국산업기술대, 한성대, 고려대(세종캠퍼스) 등 12개 대학이 적성고사 전형을 통해 총 4,636명을 뽑는다. 적성고사 전형 모집인원은 2017학년도 4,562명, 2018학년도 4,885명, 2020학년도 4,790명 등으로 4,500명 안팎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달 국가교육회에 2022학년도 대입 개편 시안을 이송하면서 ‘기타시안’ 중 하나로 ‘사교육을 유발하는 대학별 지필고사(적성고사) 축소ㆍ폐지’를 논의에 부쳤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적성고사 폐지가 처음 언급된 것이 뒤늦게 주목을 받으면서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이날 오후 3시 현재 국가교육회의 홈페이지 ‘대입제도 개편 주제토론방’에 게재된 674건의 글 중 51건(7.6%)이 적성고사 폐지와 관련돼 있을 정도다.
가장 발끈하는 이들은 중하위권 학생들이다. 적성고사 전형은 주로 평균 3~6등급(전체 수험생의 66%)인 다수 학생들이 이른바 ‘인(IN) 수도권’(수도권 소재 대학에 입학)을 하기 위한 보루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가천대의 경우 2018학년도 수시에서 적성우수자전형 1,010명 모집에 2만3,176명이 몰려 2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 지역 고2 백모(17)양은 “중하위권 학생들은 상위권보다 수가 너무 많아서 대입 벽을 뚫기가 더 어렵다”며 “내신이나 수능에서 조금만 실수해도 대학 소재지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중위권을 위한 적성고사 전형은 꼭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ㆍ학부모들은 적성고사가 등급 체계인 수능과 달리 원점수 체계로 운영돼 공정성 논란이 큰 학생부 중심 전형의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경기 고1 학부모 정모(49)씨는 “내신 점수나 학생부의 질은 도시와 지역 간, 학교와 교사 간 격차가 너무 크다”며 “학교에서는 상위권 아이들의 학생부만 신경을 써주기 때문에 적성고사는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성고사로 상당수 학생을 뽑아 온 학교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고영림 을지대 입학처장은 “대학들도 학생부 전형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수 학생을 변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 적성고사를 운영 중”이라며 “상위권 대학들은 변별을 위해 논술시험을 활용하지만, 3~6등급 학생들은 논술까지 준비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성고사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설명대로 적성고사가 사교육을 부추기는 점도 무시하긴 힘든 상황. 실제 대형 입시학원에서는 매년 적성고사 대비반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성고사만 전문으로 다루는 중소형 학원들도 즐비하다. 서울의 한 적성 전문학원은 연휴 기간인 지난 5일부터 5일 간 적성고사 집중반을 운영하면서 교습비로 26만원을 받기도 했다. 서울 지역 고교 교사 이모(30)씨는 “수능보다 적성고사 난도가 쉽다고는 하지만, 적성고사만의 유형이나 자주 출제되는 내용 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노리는 학생들은 주로 고3 5월 중반부터 학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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