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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약한 유럽이 주는 위험

입력
2016.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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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유럽의 해’를 선언했다. 미국이 베트남과 중국에 집착하던 시기가 지난 뒤였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전략적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하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발표했다. 그 후 많은 유럽인들은 미국이 유럽을 소홀히 대하는 걸 걱정했다. 난민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과 크림반도 불법 합병,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위협 등이 펼쳐지는 지금 상황에서 2016년은 미국 외교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또 다른 ‘유럽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

슬로건이 어떻든 유럽은 인상적인 권력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유럽은 미국의 국익에 필수적이다. 미국 경제가 독일보다 4배나 크지만 28개 회원국을 보유한 EU의 경제는 미국과 맞먹는다. 그리고 5억 1,000만명인 EU의 인구는 3억 2,000만명인 미국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 미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EU보다 높지만 인적 자본과 기술, 수출에 관해서라면 EU와 미국이 거의 대등하다. 그리스와 다른 나라들의 재정 문제가 금융시장에 불안감을 조장하며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던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경제학자들은 유로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달러의 역할을 금세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사 자원 면에서 유럽이 쓰는 방위비는 미국이 지출하는 것의 절반보다 적다. 하지만 남녀 군인의 수는 유럽이 미국보다 많다. 영국과 프랑스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내정 간섭을 할 수 있는 제한적 능력이 있다. 두 나라 모두 이슬람국가(IS) 공습에 있어서 중요한 협력국들이다.

소프트파워에 관해서라면 유럽은 아주 오랫동안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녀왔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국제 기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영국 컨설팅 회사 포틀랜드 그룹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소프트파워 강국 상위 20위에 유럽 국가가 14개나 차지했다. 금융위기 이후 다소 약화되긴 했지만 공통의 기구를 중심으로 유럽이 뭉치고 있다는 사실은 EU 주변 국가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유럽의 권력 자원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EU가 폭넓은 국제 이슈들에 있어서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단합이 잘 되는지, 아니면 회원국들의 민족적 정체성, 정치적 문화, 외교정책에 따라 정의되는 한정적 그룹에 머물러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 답은 이슈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무역 부문에서 유럽은 미국과 대등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줄여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유럽보다 큰 역할을 가진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비록 금융위기가 유로의 신뢰도를 깎아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독과점 금지 이슈에 있어서, 큰 규모와 매력을 지닌 유럽 시장은 합병을 원하는 미국 기업이 미국 법무부는 물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승인까지 받도록 했다. 사이버 세계에서 EU는 미국 기업들과 다른 다국적 기업들이 무시할 수 없는 사생활 보호의 세계적 표준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유럽 통합은 중요한 한계와 마주하고 있다. 유럽에선 국가적 정체성이 유럽인이라는 공동의 정체성보다 강하다.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은 외국인혐오증을 부추기며 EU 기구들까지 공격하고 있다.

법적인 통합은 EU 내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외교와 방위 정책의 통합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기구들의 권력을 축소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EU 지도자들과의 협상 결과를 놓고 2017년 말까지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맡기겠다고 공약했다. 영국이 반대에 투표해 EU를 탈퇴한다면 EU의 사기를 심각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미국이 분명하게 만들어온 성과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미국이 그걸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지만 말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유럽은 심각한 인구 문제를 겪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대규모 이주 수용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1900년에는 유럽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그 비율은 6%에 불과할 것이고 65세 이상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대규모 이주가 유럽의 장기적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특출한 지도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규모 이주는 유럽의 통합을 위협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정치적 반발은 거셌다. 이민자 유입이 급격하게 늘어났고(지난 한해 100만명이 넘었다) 많은 이주자들이 이슬람교도라는 것 때문이었다. 미국의 중요한 외교적 이익은 다시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유럽이 미국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장기적 위험은 거의 없다. 방위비 규모가 작기 때문만이 아니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갖고 있지만 통일성이 부족하다. 고등교육에 관해서라면 세계 100대 대학 중 미국이 52개인 반면 유럽은 27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유럽의 문화 산업은 인상적이다. 유럽이 내부적 차이를 극복하고 미국의 도전자가 되려 노력한다면 유럽의 자산은 미국의 힘과 동등해지진 않더라도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외교에는 유럽이 강해지는 것보다 약해지는 게 더 위험하다. 유럽과 미국이 협력 관계에 있어야 양쪽 자원이 상호 강화할 수 있다.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의 협상 진행 속도를 늦추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피할 수 없는 마찰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양쪽이 갈라설 것 같진 않다. 오바마는 TTIP 협상에 속도를 내기 위해 4월 유럽을 순방할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이 양쪽 방향으로 직접 투자하는 건 아시아와 하는 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 또 미국과 유럽이 함께 경제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인과 유럽인은 수세기 동안 서로를 비방해 왔지만 세계 어느 지역들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더 많이 공유하고 있다. 강한 미국도, 강한 유럽도 서로의 중요한 이익을 위협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6년 유럽이 약해진다면 양쪽에 해를 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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