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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기업에 자율을 허(許)하라

입력
2015.11.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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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직원이 임원이 되려면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까? 사장이 아니다. 주무 부처의 장차관이다. 공기업 임원은 사장이 임명토록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는 주무 부처의 영향력이 더 크다. 공기업 사장이 충원을 하거나 우수 직원에 인센티브를 더 주려면 기획재정부의 까다로운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공공기관운영법이 “정부는…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 무색하다.

공기업을 혁신하려는 사장이 있어도 그 뜻을 펼 힘이 없다. 공기업도 창조경제의 일원인데 자율 없이 창의가 나올 리 만무하다. 과거 포항제철이 단기간에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데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 사장을 믿고 철저한 자율권을 보장한 덕이 컸다. 당시 포철은 공기업이지만 삼성, 현대보다 더 행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얼마 전 우리 공기업 제도를 외국에 설명하던 중 ‘정부가 어떻게 증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움찔했으나 적당히 답변 후 역공을 했다. ‘공기업의 무분별한 조직 확대는 누가 막느냐’고. 돌아 온 답은 이사회였다. 그렇다. 증원 여부는 각 공기업별 이사회에서 심의하고 기재부는 기능 점검 등 더 중요한 일에 전력을 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선진국은 모두 이사회가 경영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공기업 이사회는 아직 견제 기능이 약하다. 사장과 상임이사가 내부인으로 늘 같은 편이므로 비상임이사가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 앞으로 공기업 이사회의 내부 인사는 사장으로만 한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비상임이사로 채워야 한다. 현재 공기업 중에는 항만공사만 그렇게 되어 있다. 그 결과 항만위원회는 다른 이사회에 비해 공기업 견제 기능이 강하다.

이사장제 부활도 검토해야 한다. 지금의 공기업 이사회엔 이사장 없이 단순한 의장만 있다. 공기업 이사장 제도는 낙하산, 옥상옥이 문제되어 1997년 폐지되었다. 정부의 강력 통제 하에선 이사장이 옥상옥이지만 공기업이 자율성을 갖게 되면 정부 대신 공기업을 견제할 장치로 이사장 제도는 유용하다. 물론 이사장에 낙하산 임명이 우려되기는 하나 정치력 있는 이사장은 사장의 무리한 경영이나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막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이렇게 강화된 이사회는 사장을 추천하는 본연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성은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때에만 주어야 한다. 마침 우리에겐 30년 넘은 경영평가제도가 있다. 이사회가 공기업을 견제 못해 과잉인력이 초래되면? 과잉인력은 경영평가 점수를 하락시켜 결국 공기업 직원의 성과급 삭감, 심하면 사장 해임으로 돌아온다. 이런 강력한 사후 평가제도에도 불구, 사전 통제하는 것은 관리 과잉이다. 정부도 이를 인정하여 2010년 경영자율권 확대제도란 걸 만들었다. 몇 개 우수 공기업을 선정하여 인력과 인센티브의 자율권을 주었다. 그 결과 해당 공기업의 성과가 좋아져 자율의 효과가 입증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기업의 경영자율성은 2103년 후반 이후 잊혀졌다.

이제 방만 경영과 부채 문제가 상당히 해소되어 자율 경영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사장에게 자율을 주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공기업 관리를 전면 전환할 적기이다. 아직 공기업의 준비가 완벽하지 않다고? 자율과 책임은 시행하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부모 될 준비 다 끝내고 아이 낳은 사람 있는가?

기재부에 의한 총괄 관리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인력, 조직, 보수 등은 공기업의 자율사항으로 하자. 한국을 대표할 마라톤 선수를 뽑을 때 유일한 기준은 기록이다. 박사학위 수여 시엔 박사 논문만 본다. 결과를 평가하고 과정은 각자가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방만 경영이 우려된다면 이를 경영평가 지표에 넣어 상벌을 주면 된다. 이제 우리도 사전적으로 투입을 통제하기보다는 자율에 맡기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선진시스템을 갖출 때가 되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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