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퍼트는 어릴 때 400m서 단련
분명히 출발은 내가 빨랐는데 옆 레인에서 성큼성큼 뛰어 한참을 앞지르는 누군가를 보면 얼마나 허탈할까.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와 경쟁하는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생각일 듯하다.
볼트는 100m 경기에서 41∼42걸음만 내디디면 결승선에 도달한다. 볼트의 라이벌로 꼽히는 저스틴 게이틀린(34·미국)을 비롯한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보폭이다. 게이틀린만 해도 44~45걸음에 100m 결승선을 통과한다.
볼트는 15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81로 결승선을 끊어 사상 첫 올림픽 100m 3연패를 달성했다.
다소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와 거침없는 말투는 볼트를 육상 단거리를 위해 태어난 ‘천재’의 특권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볼트의 큰 키(1m96㎝)는 단거리 선수에겐 약점이 될 수 있다. 공기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육상 지도자들은 육상 단거리 선수의 이상적인 체형으로 적당한 보폭에 공기 저항도 ‘적당히’ 받는 1m70㎝ 중후반 정도의 키를 꼽는다. 이 기준에 볼트의 키를 적용하면 그는 매우 불리한 신체조건을 안고 뛰는 셈이다. 더구나 볼트는 어린 시절부터 척추 측만증(척추가 휘어진 증상)을 앓아 척추가 변형된 상태다.
그래서 볼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했다. 척추 측만증으로 어깨와 골반이 평행을 이루지 못해 발 움직임에 방해를 받자, 오히려 어깨를 더 크게 흔들고 보폭을 넓혔다. 몸 전체에 반동을 주니 보폭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주법을 사용하자 큰 키의, 긴 하체가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속도가 조금 느려도 보폭을 크게 해 전체 걸음 수를 줄이니, 기록이 향상됐다. 볼트는 자주 허리와 허벅지 부상을 당한다. 한 시즌 국제대회 출전이 5번 정도에 그치는 것도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다. 볼트는 그 시간을 재활훈련에 쏟는다.
볼트는 트랙 위에서 한 발을 내디디면 약 2.4m를 뛴다. 지금은 볼트만의 강점이 된 큰 보폭도 사실 단거리 선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뛰었던 400m 경기 때 얻은 습관 덕분에 레이스 중반 이후부터 가속도가 붙는다. 큰 보폭에 가속도까지 붙는다면 상대 선수에겐 ‘재앙’이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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