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는 경계인, 지그문트 바우만 잠들다
현대사회를 ‘유동성’ 혹은 ‘액체성’(Liquid)이란 키워드로 파악하는 독특한 접근법으로 널리 알려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9일 영국 리즈 자택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향년 92세.
바우만의 삶은 ‘경계인’ 그 자체였다. 1925년 폴란드 포즈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치의 그림자가 밀려들자 홀로코스트를 피해 소련으로 달아났다. 10대의 나이임에도 바우만은 소련 내 폴란드의용군으로 대독일전에 참가, 용맹하게 싸웠다. 그는 나중에 “반유대주의 때문에 늘 가난했던 집안,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당했던 굴욕, 그리고 늘 나를 때리고 놀리던 아이들”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공산주의도 나치즘과 차이가 없었다. 승승장구하는 젊은 장교였건만 당내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1953년 군에서 축출됐다. 그나마 바르샤바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1968년, 또 다시 반유대주의 압박에 시달렸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으로 건너갔으나 이스라엘과도 불화했다. 시온주의의 과도한 공격성이 불편했다. 결국 1971년 영국을 택했다.
이런 이력은 공격의 빌미가 된다. 폴란드 우익들은 2006년 그가 스탈린 시절 첩보부대의 일원으로 민주인사들을 처형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바우만은 부대 일원이었지만 행정직에 불과했다면서도 어쨌든 잘못된 일이라며 사과했다. 그러나 2013년 폴란드 극우단체들은 브로츠와츠 공개토론장에서 바우만을 ‘국가의 적’이라 맹렬하게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후 바우만은 고향으로 가는 발길을 끊었다.
바우만의 이름을 학계에 퍼뜨린 건 1989년작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가 근대성의 실수, 혹은 근대성과 무관한 야만성이라 보는 관점을 뒤집었다. 많은 유대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 학살하는 홀로코스트야말로 근대적 기획의 정점이라 주장했다. 상황에 따라 누구나 그 희생자가 될 수 있는 현대는, 무정한 세상이다.
1990년 정년퇴임 뒤 바우만은 유동성, 액체성을 키워드로 이 무정한 세상을 불안하게 서성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해낸 책을 잇따라 내놨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발행)에서 바우만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신뢰를 보장해 주지 않고, 장기적인 확실성을 분명히 보여 줄 만큼 오랫동안 유지되지도 않는 이 세계에서는 앉아 있는 것보다 걷는 편이 낫고, 걷는 것보다는 뛰는 편이 나으며, 뛰는 것보다 오히려 서핑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썼다. 이런 경쾌함 덕에 그의 책은 늘 화제였고, 최근 몇 년간 10여권 이상 국내에 소개됐다.
바우만은 유동성을 끌어안은 ‘이방인’(Stranger)이 되라고 주문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가 영원히 이 세상의 이방인으로 남을지니.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고, 그게 가장 중요한 의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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