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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라, 모든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하니까

입력
2014.12.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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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가르친다는 건 어색하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라는

오래된 탈무드 격언과 비슷한 것

누군가에게 예술을 가르치는 일은 가능할까. 영어나 역사를 가르치듯 그림과 글쓰기와 노래를 가르칠 수 있을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내가 배운 예술 교육을 떠올려보면 절망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선생님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다 함께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를 부르거나 빈 도화지를 무작정 채웠던 기억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미술과 음악과 체육 시간은 공식적인 노는 시간이었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도 되니까 멍하니 칠판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예술 교육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걸 보면,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예술이라는 단어는 ‘가르친다’라는 동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호응이 되지 않는 문장을 볼 때처럼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그런데 ‘배운다’라는 말과는 잘 어울린다. ‘예술은 가르칠 수 없지만 끊임없이 배워야만 하는 어떤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런 편견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글쓰기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 때로는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같은 유리 멘탈로는 선생님의 비판을 견뎌내지 못하고 일찌감치 나가떨어졌겠지.) 1인칭은 어떻게 써야 하고 3인칭은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할 때면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 수 있다면, 한쪽은 글쓰기를 배운 삶으로 정하고 다른 쪽은 글쓰기를 전혀 배우지 않은 삶으로 정해볼 수도 있겠다. 결국 목적지는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예감이 들긴 하지만.

최근에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예술’이라는 단어와 ‘가르친다’라는 단어의 호응이 예전처럼 어색하지 않게 됐다. 어쩌면 가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오래된 탈무드의 가르침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무엇을 표현할지를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표현할지는 가르쳐줄 수 있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낚싯대의 종류에는 어떤 게 있는지, 낚싯대는 어떻게 잡으면 좋은지, 낚싯대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는 얘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수피 잘랄 앗 딘 루미는 “당신 안에 당신이 모르는 예술가가 있다. 당신이 알고 있다면, 태초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당장 그렇다고 말하라”고 했다. 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덧붙여 만드는 ‘소조’의 방식도 필요하지만 필요 없는 것들을 걷어내는 ‘조각’의 방식도 필요할 것이다. 소조한 다음 그걸 다시 조각해 내거나 잘못 조각된 부분을 다시 소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예술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면 바로 저런 방식이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는 자기 안의 예술가를 발견하게 해주고, 그걸 소리 내어 말하게 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MC메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MC메타는 1999년부터 랩을 가르치고 있다.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시작한 ‘10대를 위한 직업 체험 교실’에서 힙합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 앞에 섰다가 지금까지 랩을 가르치고 있다. 랩을 가르친다는 게 어떤 건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 “가르친다는 표현은 안 맞는 말인 거 같고요, 끄집어내게 도와주는 거죠.”

“어떻게 끄집어내죠?”

“일단 이야기를 들어야죠. 얼마 전에 10대 중반의 한 학생이 엄청난 가사를 써왔어요.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한 이야기를 가사로 썼는데, 와, 진짜 엄청나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만든 얘기냐, 네 얘기냐?’ 물었더니 자기 얘기래요. 뒷얘기를 들어보니, 때린 사람은 아버지고요. 매주 그 학생이 써온 가사를 보면서 얘기를 나눴는데 어떤 때는 남을 헐뜯는 가사를 써오기도 하고, 자수성가하겠다, 뭐 이런 종류가 많았는데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얘기를 꺼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 친구는 가사로 자기 얘기를 쓰면서 삶의 무게를 덜 수 있었던 거죠. 저는 그런 게 진짜 힙합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속에 있는 걸 어떤 방식으로든 꺼내야지 힙합인 거죠.”

“랩을 가르치다 보면 사람들의 비밀을 많이 듣게 되겠네요.”

“2000년대 초반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등장했을 때는 음악적인 기교보다 가사의 메시지가 훨씬 강렬했어요. 요즘은 변했죠. 가사가 조금만 부담스러워도 잘 듣지 않아요. 음악적으로 부드럽게 들리는 힙합을 훨씬 선호하죠. 랩 역시 음악의 한 부분이니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랩은 ‘자기 계발 랩’이에요.”

“자기 계발 랩이요?”

“내 꿈은 뭐다, 내 목표를 이룰 거다, 자수성가할 거다, 성공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다, 뭐 이런 거요.”

“아, 힙합계에도 자기 계발의 열풍이….”

“어릴 때는 자기가 멋져 보이는 걸 ‘카피’하고 싶어지잖아요. ‘스웨그’(Swagㆍ자신만의 허세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라든가, 성공한 모습 같은 게 멋져 보이는 거죠.”

“그럴 때는 어떤 조언을 해줍니까?”

“일단 최대한 철저하게,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카피를 하게 해요.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모든 창작은 도둑질에서 시작하거든요.”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모두 그렇게 시작하죠. 저도 소설가 이인성 선생님 작품을 흉내내면서 소설을 시작했어요. 나쁘게 말하면 도둑질이고, 좋게 말하면 영향을 받는 거고.”

“저는 처음 랩을 시작할 때 너티 바이 네이처(Naughty By Nature)가 너무 멋있어서 계속 따라 해봤어요. 가사를 잘 모를 때니까 재즈의 스캣처럼 뱉어보기도 하고, 톤도 흉내내보고요. 우탱클랜(Wu-Tang Clan)의 메소드 맨의 플로(flow)는 정말 경이로워서 그걸 계속 들으며 제 것으로 만들려고 했죠. 영어와 한국어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카피가 불가능해요. 그 사이에 창작이라는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저는 메소드 맨의 목소리를 악기로 생각하고, 리듬의 패턴을 배운 거예요.”

“저는 MC메타의 사투리 랩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투리만의 미묘한 액센트와 리듬감이 정말 좋거든요.”

“미국의 래퍼들과 내가 다른 점이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예전에 피시통신 랩 동호회 있을 때부터 ‘메타 형은 똑같이 랩을 해도 뭔가 다르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사투리의 성조 때문이거든요. 예전에 ‘사투리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은 적이 있어요. 그때 랩네이션이라고 신조어도 만들었는데, (웃음)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그때 사투리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걸 느꼈죠. ‘무까끼하이’를 만들면서 사투리의 소리와 리듬에 더 집중하게 된 거 같아요.”

“그때부터 작업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하셨죠? 현장에 가서 녹음 직전에 가사를 쓰는 걸로요.”

“메모는 엄청나게 하죠. 예전에는 휴대전화에 메모 기능이 별로 없었으니까 나한테 계속 문자를 보냈어요. 요즘은 N사의 메모 기능을 이용하고요. 그런데 한번씩 메모를 싹 다 지우는 시기가 와요. 휴대전화를 바꿀 때나 한번씩 예전 메모를 뒤져볼 때, ‘아, 나는 이때와는 이미 다른 지점에 와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요. 주저하지 않고 다 지웁니다. 제 창작의 비밀이 뭘까 생각해봤는데요, 일단 닥치는 대로 듣습니다. 힙합 장인의 랩이든 완전 신예의 믹스테이프든 다 들어요. 요즘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솔직히 말합니다. ‘너의 그런 점이 정말 부럽다. 좋다. 너의 플로에 영감을 받았다.’ 20년 가까이 랩을 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겨우 문턱을 넘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서 제가 이뤘던 걸 생각하는 대신, 최대한 실험적인 걸 더 해보려고 해요.”

“창작의 비밀이 그 두 가지네요. 듣고, 앞으로 나아가고.”

“래퍼들은 말과 이야기로 시대의 구석구석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함께 살고 있는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냐도 중요해요. 저도 언어파괴에 부정적이긴 한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들도 껴안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빼박캔트’라는 단어 아세요? ‘빼도 박도 못한다’(빼박+can’t)라는 뜻인데, 말 줄임과 한영혼용이 절묘하게 다 들어가 있는 단어예요. 어쩌면 곧 증발해버릴지도 모를 구석구석의 언어를 가사에 쓰고 싶은 생각이 많아요. 한국말과 힙합의 리듬을 접목시킬 생각은 계속 하고 있고요.”

힙합은 매력적인 음악 장르다. 매력적인 만큼 힘들기도 하다. 음악 위에 서서 시를 써야 한다. 리듬이라는 말을 타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심장에다 이야기를 꽂아야 한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MC메타의 ‘창작의 비밀’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포크 음악과 로큰롤을 좋아하다가 한 순간 ‘힙합과 랩’에 꽂혔다. 힙합에서 나오던 욕설은 그 어떤 메탈 음악보다 강렬했다. 그는 그 음악들을 이해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시디를 모았고, 가사를 해석해나갔다. 음악을 듣고 또 들었고, 흑인들의 리듬과 라임과 플로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말하고 내뱉고 중얼거렸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MC메타를 만들었다. 자, 이제 사전적 정의를 뒤집을 때가 됐다. 국어사전에는 ‘창조’의 반대말이 ‘모방’과 ‘답습’이라고 나와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들은 모두 ‘모방’과 ‘답습’을 거치며 ‘창조’에 이르는 게 아닐까. (세기의 천재가 아닌 이상) 모방과 답습 사이에서 길을 잃고 고민하고 자책하다가 자신만의 창조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창조의 반대말은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라 ‘안 창조’ ‘못 창조’ ‘창조하려고 시도조차 안 함’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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