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 노동자들이 폐로 작업중
우크라이나 경제난으로 난방 중단에 월급삭감까지
“사고 30년? 관심 없어…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해”
지난 11월 어느 월요일 아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발전소. 노동자들을 가득 실은 출근 버스가 몇 대 지나가는가 싶더니 원전 사고 20주년에 세운 희생자 추모 위령탑 옆으로 직원들이 삼삼오오 한가롭게 발길을 옮긴다. 특별할 것 없는 발전소의 출근 풍경이다.
단, 뒤편으로 보이는 낡은 콘크리트 건물과 이를 둘러싼 고철 구조물만 뺀다면 말이다.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이것이 1986년 4월 26일 최악의 원전 폭발사고를 낸 체르노빌 원전 4호기인 줄 알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아직도 고농도의 방사선이 누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체르노빌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전력의 43%(국제원자력구ㆍIAEA, 2013년 기준)를 원전으로 생산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도 2000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멈췄다. 4호기 폭발 뒤 건설 중이던 5,6호기는 전면 중단한 반면, 1~3호기는 수년간 전력을 생산했다. 그러다 2호기 1992년, 1호기 1996년에 이어 마지막 3호기까지 2000년 폐로에 들어가면서 현재 체르노빌에는 가동 중인 원자로가 없다.
그러나 발전소는 전력만 생산하지 않을 뿐 신석관 공사와 같은 폐로작업으로 바삐 돌아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개인 피폭 허용량을 넘지 않는 선에서 교대한다.
“유니폼 색깔로 노동자들의 소속을 구분합니다. 단순노동은 주로 우크라이나 회사에서 인력을 대고 전문기술이 필요한 분야는 다양한 국적의 회사가 나눠 맡습니다. 가령 용접은 우크라이나, 도금은 터키, 건설은 이탈리아 등이 담당함으로써 비용은 낮추고 전문성은 높이는거죠.” 체르노빌 발전소 국제담당 안톤 포발씨의 설명이다. 현재 발전소 내에는 정규직 2,500여명과 계약직 3,000여명이 근무 중이며 계약직의 경우 많게는 5단계에 걸쳐 하청, 재하청이 이뤄지기 때문에 얽힌 회사는 수도 없이 많다.
취재진은 발전소 내부로 들어갔다. 개인선량계와 캔버스 천으로 된 흰 가운, 모자, 신발을 감싸는 비닐 정도가 제공됐다. 사고가 난 4호기는 핵연료봉까지 그대로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같은 해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든 석관으로 완전히 밀봉됐다. 취재진은 4호기와 구조가 같은 2호기 제어실에 들어섰다. 오래된 다이얼식 전화기와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수천 개의 버튼이 들어찬 제어실에는 원전 기술자들이 지금도 근무하고 있었다. 1988년부터 일했다는 브레슈 알렉산더 제어실 총감독은 “배전시스템은 지금도 작동 중”이라며 “발전소 내부 기술자들은 대체로 장기 근무자들로 30대 이하 젊은 직원은 10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역시 4호기와 같은 구조의 3호기에선 냉각수 펌프실까지 들어갔다. 개인 방사선 계측기 사용이 불가해 직접 측정하지는 못했지만 2013년 같은 곳을 방문한 일본 취재진에 따르면 무려 12.5μsv/h에 달했다. 서울 평균의 120배를 넘는 수치다. 4년 전 구석관 옆으로 새 벽을 쌓는 데 동원됐던 노동자들은 하루 3~4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을 정도로 방사선 농도가 높았다고 한다. 이 벽은 붕괴 위기에 처한 구석관 위에 신석관을 덧씌우는 공사에 투입된 현장 인력들의 안전을 위해 건설됐다.
원전을 덮어 버리는 신석관은 높이 110m, 너비 260m, 무게 3만 1,000톤에 달하는 아치형의 초대형 구조물이다. 뉴욕 자유의여신상(높이 93m),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길이 183m)도 담을 수 있는 크기다. 구조물 자체에만 15억 달러, 총 공사예산은 40억 달러에 달한다. 아치형의 두 구조물은 거의 완료됐고 현재 이 둘을 연결하는 브릿지를 건설 중인데, 내년 완공이 목표다. 하지만 한 발전소 관계자는 “아무도 진짜 완공 일자를 모른다. 이미 여러 번 완공이 연기된데다 공사가 지연돼도 그 원인이 복합적이라 책임소재를 따지기가 어렵다. 비용은 늘어가는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감당할 수 없어 국제사회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것도 한 이유”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작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발전소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직원 월급은 3개월 새 절반 이하로 깎였고, 겨울이 오는데도 난방은 들어오지 않았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체르노빌 사고 30년은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였다. 매일 이어지는 발전소의 하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톤 포발씨는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건 러시아와 갈등이 얼마나 고조될지, 이에 따라 경제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에 대한 것뿐이다”고 말했다.
체르노빌=김혜경 프리랜서기자 salutky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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