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을 받고 있어 과학 수사기법으로 25년 해묵은 위작 논란의 진위가 가려질지 미술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위작이라며 천 화백 유족이 고소한 이후 검찰은 국과수에 의뢰해 이 작품에 대한 정밀 검사를 진행 중이다. 국과수의 위작 검증은 화가의 진품 그림에 사용된 물감 등 각종 정보를 분석한 후 위작 의심을 받는 작품과 비교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달 초 ‘미인도’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넘겨 받았고, 이와 비교하기 위해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천경자 1주기 추모전에 전시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등 대작 2점과 소품 3점을 압수해 조사했다.
국과수의 조사는 국과수 법화학과, 디지털분석과 두 곳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법화학과는 현미경을 이용한 정밀 외관 검사를 기본으로 한다. 감정기법은 현미경 시험법, 분광광도법, 질량분석법, 엑스선 형광분석법 등이 있다. 현미경 시험법은 시약을 이용해 물감과 같은 시료를 용해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 후 현미경으로 시료의 성분이나 입자 크기 등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분광광도법은 적외선이나 자외선 등 특정 파장의 빛을 그림에 쏜 후 반사각을 측정해 특정 물질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주로 적외선은 탄소 성분을 잡아내 연필 등으로 그린 밑그림을 파악할 때, 자외선은 그림을 덧칠했는지 파악할 때 쓴다.
엑스선 형광분석법은 기계에서 쏜 엑스선을 맞은 물질이 형광하는 색과 정도 등을 분석해 어떤 물질인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결과가 다르다면 다른 물질로 볼 수 있고, 그림의 경우 비슷한 색의 물감이라도 함유된 원소가 전혀 다를 수 있다. 질량분석법은 안료를 채취해 직접 분석해 물감 성분의 좀더 정확히 알아내는 방법이다.
디지털분석과는 현미경과 분광비교시스템 검사를 한다. 현미경 검사는 안료의 모양, 캔버스의 재질이나 캔버스 천의 색 등을 보는 것이다. 또 감정서나 작가 서명의 필체 등을 비교하고자 감정 대상을 확대해 면밀히 관찰한다. 분광비교시스템 검사는 그림을 빛에 비쳤을 때 나타나는 투과율 같은 반응을 분석해 물감에 포함된 성분 등을 가려내는 것이다.
최근 국과수가 이우환 위작을 판정할 때도 이런 기법들이 동원됐다. 이우환의 경우 물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진품의 납 함유량이 위작보다 두 배 이상 많았고, 진품에는 들어있는 아연이 위작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우환의 경우 눈으로 살피는 전문가 안목 감정에서 위작 판정이 난 상태에서 국과수 분석 결과까지 나와 진위가 굳어졌다. 이런 감정 결과와 달리 작가가 29일 “진품”이라는 의견을 밝혀 논란이 예상되긴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사람들까지 “위조”를 시인한 터라 위작 감정 자체가 뒤집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다.
‘미인도’의 경우 1991년 위작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의 의뢰로 국과수가 ‘필적 검사’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물감 성분 검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국과수는 “문제의 서명은 일반 필기구에 의한 필적이 아니라 화필로 기재한 것으로 대조문자수가 부족하고 기재할 때마다 변화점이 있으며 대조 기준의 미정립으로 판별이 불확실하다”는 결론을 냈다. KIST 역시 “이 안료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료검사만으로 진위 파악은 어렵다”는 답을 했다. ‘진위 판정 불가’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번 조사의 경우 진전된 기술로, 그것도 필적만이 아니라 물감 성분까지 분석하는 것이어서 진위 판단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적지 않다.
앞서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는 천 화백이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상대로 사자명예훼손ㆍ저작권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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