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국·영·수 모두 여학생이 우위
외교관 후보 남성 비율 35% 그쳐
행시 주요 직렬 수석도 모두 여성
"게임·술 덜 즐기고 집중력 높아
정돈 잘하는 스타일이 시험에 유리"
남성 우대하는 기업문화 탓에
차별 피해 성적 분명한 고시 등 몰려
자율형 사립고 하나고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특별감사에서 성비 조작이 사실로 드러났다. 성적 이외 가산점인 ‘보정점수’를 부여해 90명의 학생을 합격시켰는데, 성적이 낮은데도 보정점수로 합격한 이들 중 78명이 남학생이었다. 전국 단위 자사고 중 몇 년 째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는 하나고의 사례는 성비조작이 필요할 만큼 여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교육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왜 여학생은 공부를 더 잘 할까.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이 공부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앞선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었다. 가난한 집 장남에게는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공부를 시키고 딸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지 않은 것은 남성중심의 가부장 문화가 주된 원인이지만, 선천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뛰어난 학업성적을 거둔 여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아들을 둔 부모는 자녀가 남녀공학에 배정되면 부담스러워하고 딸을 둔 부모는 환호성을 지르는 ‘여고남저’ 현상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가 됐다.
수능 상위권은 여학생, 하위권은 남학생 많아
과연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얼마나 공부를 잘 할까. 입시업체인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서울 소재 일반고 재학생을 기준으로 주요 과목인 국어, 수학, 영어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총 457명이었다. 이 중 257명이 여학생으로 남학생(200명)보다 57명이 많았다. 상위권인 1~3등급 비율을 보면 여학생은 16.98%인 반면 남학생은 12.79%에 불과하다. 반면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7~9등급의 비율은 남학생이 33.88%로 여학생 22%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전국 소재 일반고 재학생의 성적을 비교해도 하위 7~9등급 비율은 남학생이 30.3%, 여학생이 22.3%로 나타났다. 상위권에는 여학생이, 하위권에는 남학생들이 많이 분포한다는 얘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분석결과에서도 여학생 우위는 뚜렷했다. 국ㆍ영ㆍ수 전 영역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의 표준점수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남학생들의 과목이라 불리는 수학에서도 여학생이 수학A 1.5점 수학B 0.4점 더 높았다. 난이도가 높은 수학 B형에서 여학생들이 우위를 점한 것은 평가원이 수능 성적 분석 결과를 내놓은 2010년 이후 처음이었다.
남성 선호도가 높던 다른 국가시험도 상황은 비슷하다. 외무고시 폐지 후 2013년부터 도입된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에서 여성 비율은 줄곧 남성을 앞질렀다. 2013년 58.1%, 2014년 63.9%, 2015년 64.9%로 여성 비율은 증가추세다. 지난 17일 발표된 5급 공채(행정고시)에서는 일반행정, 재경, 국제통상, 법무행정, 교육행정 등 주요 직렬 수석이 모두 여성이었다. 행시 합격자에서도 역시 여성이 48.2%로 절반에 육박해 있다. 올해 국가직 7급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합격자 비율은 37.4%로 성별집계를 시작한 2004년(27.0%)이래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 “여학생 공부 잘한다” 입 모아
교육 전문가들은 “여학생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교육 현장에서도 남학생의 경쟁력이 여학생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체감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시험의 성격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성(性) 특화된 생활적 측면에서 여성이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여성 특성상 수능이나 고시 등 각종 시험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시험이 창의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배운 지식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라며 “목표지향이 분명하고 자기 일상생활을 정돈 있게 잘하는 스타일이 유리하다는 점에서 여학생들이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사회적으로 남녀 차별이 사라진데다, 남학생에 비해 집중력이 높아 여학생들의 시험성적이 좋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컴퓨터 게임이 일반화되면서 게임중독 피해를 보는 학생들은 거의 전부가 남학생”이라고 말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역시 “게임, 술자리, 스포츠 등 무언가에 빠질 가능성이 남학생이 더 높다”며 “많은 시간을 그곳에 빼앗기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평균적으로 공부에 몰입하는 시간이 여학생보다 부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출산으로 인한 ‘남존여비’ 현상이 쇠퇴하는 추세도 원인으로 꼽힌다. 김경근 교수는 “저출산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성별에 따른 차별 역시 사라졌다”며 “자식을 1~2명만 낳는 상황에서 딸 가진 부모들도 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여성진출 활발하지만 남성중심 조직문화 바뀌어야
실력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눈에 띄게 활발해졌지만, 한계도 여전하다. 조직의 중요의사 결정에서 배제되는 유리천장은 깨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상장 기업 임원 중 여성은 100명중 2명일 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5년 세계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비슷한 일을 할 때 임금 평등도’ 항목에서 0.55점(1점이 가장 평등)으로 145개국 중 116위에 그칠 정도로 불공평했다. 더구나 여성 경제활동 인구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이렇다 보니 여성들이 시험성적으로만 남성들과 경쟁할 수 있는 각종 시험에 몰리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는 많은 여성 합격자로 오히려 남성을 보호해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일 공무원 선발 시험(9급 교육행정직)에서 남성 합격자가 적자 ‘양성평등채용목표제’(한쪽 성비가 합격자의 70%를 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적용해 10명을 추가 합격시켰다. 최종합격자 중 남성합격자가 23.9%에 그치자, 이 제도를 통해 남성을 충원한 것이다. 1996년 여성의 사회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여성채용목표제’를 시행했지만 2000년 공무원시험에서 남성의 군가산점이 폐지되자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2003년 이 제도가 도입됐다.
김복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경쟁의 대상이 아닌 배려의 대상이던 여성의 대학진학, 사회참여가 일반화되면서 남과 여가 전반적으로 동등하게 경쟁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조직의 관리직 이상에서는 여성이 갖고 있는 능력과 재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측면도 많다”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은 과거처럼 여성을 10%든 20%든 채우는 게 중요했던 단계는 지났고, 주요부서에 여성 배치를 꺼리는 문제가 새로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여성의 사회진출에 걸맞도록 관리자들이 남성중심의 조직 문화를 바꾸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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