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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최저임금의 다음 과제

입력
2017.08.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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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의 목적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제1조). 최저임금법은 1980년대 이른바 ‘3저 호황’에 의해 우리 경제가 10%대의 고도성장을 이룬 시기, 미래에 대한 낙관과 자신감을 토대 삼아 1986년 12월 31일 제정되었다. 법 제1조에서 천명했듯이 그 최종적 목표는 경제의 무조건적 ‘성장’이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건전한’ 발전이었다. 이 목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여기에서 우리의 고민이 시작된다. 시장적 잣대와 우리 사회의 규범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이 최저임금 제도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의 조문에선 드러나지 않지만, 그 법안에 첨부된 제정 이유에서는 최저임금 제도를 통해 “노동력의 원활한 재생산과 질적 향상”을 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노동시장 제도는 기업의 수요만으로 존재할 수 없고,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좋은 노동력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저임금은 노동력에 대한 기업의 수요를 늘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시민들의 근로 의욕을 감소시킨다. 취업으로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이 낮을 때 근로 유인 자체가 저하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기업은 노동시장에서 좋은 노동력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최저임금 제도가 노동력의 원활한 재생산과 질적 향상을 기한다는 것은 결국 시장적 잣대의 남용을 막아 노동시장의 건전성을 꾀한다는 뜻이다.

저임금으로 인한 근로 의욕 저하는 빈곤 상황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저소득층의 경제활동률이 낮아질 경우 빈곤의 장기화로 이어지고 빈곤 탈출의 이동성이 약화되는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이래 저학력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의 감소 비율은 8.7%, 저학력 여성은 2.2%에 이른다. 이는 OECD 국가에서 평균적으로 저학력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0.6% 감소하고 저학력 여성은 3.3%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저소득층의 경제활동률이 낮아진 원인 중 하나는 저임금 일자리인 것으로 추측된다(윤희숙, ‘근로빈곤층의 빈곤 현황과 정책평가’, 보건복지포럼 2013년 3월호).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시기와 저소득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감소한 시기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최저임금액의 인상은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고취시켜 해당 가계의 빈곤 탈출을 돕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액을 올리는 것만으로 최저임금 제도가 예정한 위 목표를 달성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의 고용 상황이 최저임금 제도가 만들어진 1986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즉, 1990년대 이래 지속된 서비스 산업으로의 산업구조 개편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 등으로 인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같은 새로운 노무공급 유형이 출현ㆍ확대되고 이들 중 다수가 저임금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근로자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는 최저임금 제도는 이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각지대가 있는 한 지금의 최저임금 제도는 불완전한 소득 보장 또는 노동시장 정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기업은 새로운 노동력의 충원 장소로 이 사각지대를 떠올릴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등을 통해 앞으로 이러한 노무공급 유형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득 보장 장치로서 최저임금 제도의 미래에 대한 재검토가 더욱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그 고민의 출발점은 최저임금 제도를 확대ㆍ개편하여 다양한 일자리들을 최저임금 시스템에 포함시킬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제도 설립을 통해 그들만을 위한 독자적인 정책을 마련할 것인지 여부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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