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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김영란법이 정착되려면

입력
2016.08.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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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김영란법’이 논란이다. 법 적용 대상이 되는 이들은 드러내지는 못해도 속앓이가 심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수 국민은 기득 계층들이 유지했던 암묵적 결탁의 단절을 반기는 분위기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논란 끝에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렸고 국회가 이를 바꾸지 않는 한 법은 원안대로 시행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청탁 및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적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공무원 등 공직자, 공공기관 종사자, 사립학교 교원 및 언론인 등이 대상이다. 법 적용의 구체적 방법은 시행령에 위임했으니 그것이 나와 봐야 알 테지만 쟁점은 밥값, 선물비, 경조사비 등에 관한 상한 규제(각각 3만, 5만, 10만원)의 현실성 여부다. 법 취지가 ‘잠재적’ 이해관계자들 간에 밥이나 선물로 접대하지 말라는 것이니 상한을 정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난센스다. 밥값은 각자 내고, 선물은 가급적 주고받지 말며, 경조사 부조의 경우 오랜 관습이니 적절한 수준에서 하면 된다.

아마도 법 적용 대상이 되는 많은 사람은 이러한 규범을 지키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이 문화와 관행 나아가 의식의 변화를 강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우리 사회의 관계 관리 및 교류 관행 등은 매우 급진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가 초래할 부정적 효과를 관리하는 일도 법 시행만큼이나 시급한 과제다.

우선 외부화 문제다. 어떤 사람의 행위가 시장을 통하지 않고 타인에게 이익이나 손해를 끼치는 현상을 외부효과라고 한다. 시장 밖의 일이라 외부라는 수식이 붙으며 그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청탁금지법의 규범적 적합성 및 사회적 필요와 별개로 이는 상당한 외부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호텔 또는 식당의 영업 위축 가능성이 높고, 택배 및 대리운전 서비스도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부정거래의 음성화를 차단하는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공짜가 없다. 거래되는 모든 것은 가격으로 환산되며 얻는 만큼 대가가 지불된다. 따라서 효익이 큰 물건일수록 사회적 거래비용도 높다. 겉으로 보이는 일상의 표면적 관계들은 극적으로 감소할 수 있으나 광고, 사업 등을 통한 대형 청탁은 오히려 활성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자원과 권력이 클수록 이러한 ‘합법적’ 부당거래의 가능성은 커진다.

대상의 형평성 논란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청탁금지법 대상에는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국회의원과 전관 논란이 지속되는 변호사 등이 빠져있다. 국회의원들이 입법자의 지위로 자신들을 배제한 것은 도덕적 해이의 극단적 전형이며, 전관의 지위로 사건을 왜곡하는 검사ㆍ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빠진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국회 일부에서 자신들 포함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이것이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안다.

마지막은 감시자 ‘감시’의 문제다. 형법과 마찬가지로 청탁금지법은 그 대상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간주한다. 문제는 검찰, 경찰 등 법 적용의 핵심 대상자가 법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관행과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사정을 고려하면 편파적 선택과 배제, 법 적용의 오남용 등을 관리할 적절한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입법 취지와 무관하게 개인 감시와 사찰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청탁금지법의 취지에 동의하며 그 가치를 존중한다. 하지만 500만 국민의 일상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법률이 규율하고 지배하는 일도 썩 유쾌한 건 아니다. 자본주의가 성숙하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 사회적 관계와 의사결정의 합리성도 증가하리라 기대했는데 우리 사회는 그러지 못했는가 보다. 법보다는 문화와 관행이 더 좋은 수단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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