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윤주 기자

등록 : 2018.04.16 04:40
수정 : 2018.04.16 09:39

“오너의 갑질, 직원을 업무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탓”

직장갑질 119 조현주 변호사

등록 : 2018.04.16 04:40
수정 : 2018.04.16 09:39

‘이런 것은 하면 안 된다’는 인식

유독 우리나라 기업에는 없어

노사정 대등한 외국 풍경에 놀라

갑질 당했을 때 기록이 중요

그때 그때 사실관계 남겨야 유리

조현주 변호사는 “정의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변호사로서 기여하고 싶어서, 세상에 해가 되지 않고 도움 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 민주노총 법률원에 지원했고, 119 활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ssshin@hankookilbo.com

광고대행사 직원을 향해 물컵을 던진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논란은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첫째 영국 BBC를 비롯한 외신이 비교 마땅한 사례가 없어 이 사건을 재벌의 ‘이상한 행동(the antics)’으로 소개한 반면, 비슷한 사건을 무수히 목격한 한국인들은 ‘갑질’이란 고유어로 완전무결하게 규정할 수 있었다는 점. 둘째 한국인 대다수가 조 전무 사건에 대해 ‘대리 분노’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도 사흘 만에 이 사건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이 100건을 넘었다. 이 같은 전 사회적 공분은 각자 직장에서 겪은 갑질에 대한 분노가 다른 직장 갑질에 투사된 결과가 아닐까.

13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직장갑질 119’의 조현주(41)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이런 건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기업에는) 그런 인식이 없다. 피해자는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갑질을) 알리지 못했고, 사회에 알려지는 통로도 굉장히 막혀있었다”고 말했다. 현상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으니 인식 변화나 구제할 제도가 미비했다는 말이다.

사주가 직원을, 상사가 부하를 동등한 업무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갑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2년 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갔을 때, 사용자-노동자-정부가 대등한 관계에서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놀랐어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8년째 일하고 있지만) 그 장면이 굉장히 신선했죠. 최순실 사태 등 그 동안 정경유착 폐단이 컸는데, 우리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얘기하면서도 중간 조율을 한다기보다 사측 편향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직장갑질 119 스태프 조현주 변호사. 신상순 선임기자

직장갑질 119(이하 119)는 이름처럼, 만연한 직장 갑질 문제를 해결해보자며 만든 민간단체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등 시민단체와 변호사, 노무사 등 241인의 노동 전문가가 참여한다. 조 변호사 역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 소속돼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등 기존의 민간 노동 상담 창구의 한계를 보완해 ▦온라인 집단 채팅 또는 이메일 ▦익명 보장을 내세웠다. 지난해 11월 1일 출범 후 하루 평균 80~100건의 ‘직장 갑질’이 제보되고 있다.

‘노동법’ ‘노조’ 같은 딱딱한 명칭을 뗀, 문턱 낮춘 상담 창구를 운영하며 조 변호사는 현실과 제도의 괴리를 예전보다 더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예컨대 간호사 태움 문화처럼 “형법 상의 협박 모욕죄 폭행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갑질이 맞는, 민사 손해배상 청구 외에 방법이 없는 직장 내 괴롭힘이 상담의 상당 부분”이라는 것이다. 119가 출범 후 100일까지 상담 신청건을 바탕으로 만든 유형별 갑질통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15.1%)은 임금체불(24%)과 기타(15.2%)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근한 업무 배제, ‘그거 밖에 못하니?’ 같은 지속적인 무시 등은 일반 법률에서는 제재 방법이 없죠. 근로기준법이 처벌하는 ‘강요된 근로’는 감금, 협박 등으로 의무 없는 일을 시키는 경우인데 요즘 세상에 직원을 가둬두고 일 시키진 않잖아요. 이 기준에서 성심병원 간호사 춤 강요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달라진 노동환경에 비해 이들을 보호할 제도와 법은 한참 후진적이라는 지적이다. 흔히 갑질 신고의 최후 보루로 생각하는 인권위원회 진정은 민간기업을 다닌다면 포기해야 한다. 차별, 성희롱을 제외한 사기업에서 발생한 인격권 침해는 진정 대상이 아니다.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15일 새벽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464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작금의 현실에서 일단 갑질을 당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조 변호사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통 갑질을 한 번 당했을 때 ‘문제제기 해야지’ 생각 못하거든요. 갑질이 쌓이고 쌓였을 때 해결 방법을 찾는데 녹음 등 입증할 증거를 수집하고, 사실 관계를 적어두는 게 중요합니다.”

갑질 폭로 후 가해질 수 있는 2차 피해는 119 스태프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조 변호사가 “갑질 피해자가 여러 명일 때, 동료와 함께 문제 제기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119 상담을 하면서 노조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직장 갑질에 대해 상담 요청하면 제가 ‘법률상 이런 방법이 있다’고 답변하지만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거든요. 노조 조직률(2016년 기준 10.3%)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왜 유독 직장 갑질이 많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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