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안 가결 이후 정치가 얼어붙었다. 청와대와 여야가 모두 상대방을 격렬히 비난하며 각각 제 갈 길만 가겠다는 상황이어서 극한 대치와 갈등을 풀어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 안보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이 무엇을 위해 서로 끝장을 보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야당 주도로 가결된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거듭 밝혔다. 임명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김 장관을 대상으로 직무능력과 무관하게 해임건의가 이뤄졌고, 인사청문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 대부분이 해소됐다는 게 이유다. 국회의 해임건의가 대통령에게 해임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어서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중요하지만, 과거 다섯 차례의 해임건의안이 사실상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법적 강제력이 폐지된 1987년 개헌 이후에도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국회의 해임건의안 가결과 동시에 자진 사퇴한 데 비춰 박 대통령의 거부는 기존의 국회 존중 관례를 깬 것이다.
형식적 논란보다 정치현실을 존중해야
더욱이 청와대가 무엇을 근거로 김 장관에게 제기된 의혹이 해소됐다고 주장하는지도 알 수 없다. ‘황제 전세’나 ‘초저금리 대출’, 모친의 의료보험 부정수급 의혹이 과거 사례에 비춰 결격 사유가 될 만한 사안인지를 둘러싼 논란은 있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청결을 내세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더욱이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는 도덕성 문제와 관련해 고위공직자로서의 엄중한 처신을 다짐하더니, 임명장을 받자마자 대학동문회 SNS에 엉뚱한 피해의식을 드러내며 반발하기까지 했다. 김 장관의 기이한 처신은 고위공직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할 만했고, 야당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해임건의안 표결 과정에서 ‘김 장관 지키기’ 방어막을 친 새누리당의 자세는 국정 버팀목인 집권당의 역할이라고 이해할 부분도 없지 않다. 해임건의안 표결 당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차수 및 안건 변경을 둘러싼 위법성 주장 역시 따져볼 일이다. 국회법상 의사일정 변경 시 교섭단체간의 협의를 요구하고 있으나 서면을 통한 일방적 통보에 그쳤다는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제기를 넘어 국정감사를 포함한 의사 일정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여당의 벼랑 끝 전술은 앞서 해임건의안 표결 절차에서 보인 집권당의 책임 있는 자세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심지어 정 의장에 대한 형사고발까지 고려하고 있다니 감정 일변도의 지나친 대응이다. 반면 야 3당은 청와대의 해임거부와 여당의 반발을 비난하면서 야당 단독의 국정감사를 진행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여당을 설득할 생각은 아예 없으니 국회를 공중분해라도 시킬 심산이다. 거대여당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청와대와 김 장관의 결단이 요구된다
정치 주체들이 극한적 대결자세에 매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결과는 의정과 국정 마비, 국론 분열 외에 달리 없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국정의 핵심책임을 진 청와대의 태도 변화부터 요구된다. 박 대통령이 ‘의사 번복’이 싫다면 김 장관이라도 스스로 결단하는 게 맞다. 정 의장도 여야와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해 마땅하다. 가뜩이나 내우외환이 닥치고 있는 마당에 정치권이 통째로 국민에게 짐이 되어서야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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