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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유적으로 알려진 보마성, 中 "금나라가 세운 건축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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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유적으로 알려진 보마성, 中 "금나라가 세운 건축물" 주장

입력
2014.10.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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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는 발해 일원이 세운 나라 또 다른 동북공정으로 보긴 일러"

'보마성'을 복원하여 역사유적으로 조성하기 위한 복원 조감도. 신화넷 제공
'보마성'을 복원하여 역사유적으로 조성하기 위한 복원 조감도. 신화넷 제공
보마성 유적지. 신화넷 제공
보마성 유적지. 신화넷 제공
보마성 유적지. 신화넷 제공
보마성 유적지. 신화넷 제공

중국 역사학계가 백두산 인근의 발해 유적으로 알려졌던 보마성(寶馬城) 유적에 대해 금나라가 세운 건축물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진행되어온 중국 동북공정의 일환 아니냐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국내 역사학계는 대체로 “좀 더 두고 보자”는 반응이다.

11일 중국 신화망(新華網)에 따르면 지린(吉林)대학 고고연구센터는 지난 8~9월 국가문물국의 승인을 받아 보마성 유적에 대한 유물 발굴 사업을 실시했다. 보마성 유적은 백두산 천지에서 북쪽으로 30㎞거리에 있으며 1,200년 전 발해가 당나라와의 주요 교통로에 축조한 성으로 여겨져 왔다. 800년 전 금나라 시대에도 이 성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지린대학 연구팀은 보마성이 발해가 조공로에 세운 중요 역참이었다는 기존 학설을 뒤엎고 금나라 황실이 백두산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이번 발굴사업에서 금나라 황실을 상징하는 기와 조각 등이 다수 출토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지린대학 연구팀의 발굴작업은 726㎡ 넓이의 건축물 기초 한 곳에서 이뤄졌으며 짐승얼굴 모양이 새겨진 와당과 처마 끝의 기와, 장식물 등 도제 건축재료 100여점이 출토됐다. 연구팀은 건축재료에 담긴 용과 봉황 무늬가 금나라 황실을 상징하며 쇠못 수백개와 도자기, 철기 등도 금나라 시대 유물의 특징을 지녔다고 밝혔다. 보마성 유적은 465m의 성벽과 성 안 중심부의 대형 건축물 기초 3곳이 남아있다.

발굴을 지휘한 자오쥔제(趙俊杰) 박사는 “이번에 발굴을 벌인 건축물 기초는 금나라 황제와 백관이 태양제를 올리던 전각인 조일전의 기초와 비슷하다”며 “유적과 유물 모두가 최상급이어서 보마성이 백두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금나라 황실의 사당이라 판단할 수 있었다”고 신화망에 밝혔다. 연구팀은 이런 발굴 결과가 사서의 내용과도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금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금서’(金書)에 따르면 금나라 세종이 중국 황제가 태산에 제사를 올리는 것을 모방해 1172년 백두산 북쪽에 사당을 세워 봄과 가을 제사를 지냈다.

보마성에 대한 새로운 학설에 대해 국내 역사학계는 다소 유보적이다. 동북공정과 연계 짓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은 부정적이다.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번 발굴 조사 내용만 보아서는 중국이 동북공정의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추가 조사를 한다고 하니 그 결과가 나온 뒤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규철 경성대 사학과 교수도 “금나라는 발해의 일원이었던 여진(말갈)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보마성 유적을 금나라 유적이라고 하는 것을 동북공정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다”고 판단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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