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첨삭ㆍ토플ㆍ텝스 시험에
대입 준비ㆍ수학ㆍ과학 공부까지
교육당국 세밀한 규제 장치 필요
서울의 예비 중2 A(14)양은 지난해 7월 여름 방학을 맞아 한 외국어고등학교 영어캠프에 참가했다가 회의감만 잔뜩 안고 돌아왔다. 영어로 독서 토론을 하거나 원어민 교사와 생활하면서 어학 능력을 기르고 싶었지만 2주 가까이 고등학교ㆍ대학 입시에 대비하는 프로그램에만 시달렸던 탓이다. 캠프에 참가한 강사와 교사들이 참가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첨삭을 해주는가 하면 토플, 텝스 같은 입시 영어 시험도 치러야 했다. A양은 “중학교 1학년 수준에 맞는 영어보다는 고입, 대입 시험에 필요한 내용 위주여서 너무 버거웠다”며 “제대로 소화를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캠프가 끝나고 비용이 150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책감이 더욱 커졌다”고 털어놨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특목ㆍ자사고의 영어캠프가 해당 학교와 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현직 교사들이 참석해 내신이나 자기소개서 지도를 해주는가 하면 최근 대학 입시에서 비중이 커지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 준비를 시키는 학교도 있다. 앞서 2014년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학교시설을 활용한 방학 중 어학캠프 운영 기준’을 마련했으나 강제성이 없어 대부분 학교가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9일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하나고와 용인 외대부고, 민족사관고 등 13개 특목ㆍ자사고에서 운영하는 영어캠프 실태조사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우선 13개 학교는 캠프 참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당 학교 지원을 위한 학습법을 상세히 소개했다. 용인 외대부고의 경우 참가자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써내라고 해 첨삭본을 제공했고, 담당교사와의 상담일지를 학생들이 추후 입시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심지어 학교 홈페이지에 ‘캠프참가자 중 70% 이상이 입학희망자’ 라는 사실을 공개(하나고)하거나, 참가자를 학교 ‘명예학생’으로 선정(민사고)하는 등 마치 영어캠프가 해당학교 입학을 위한 예비과정인 것처럼 홍보했다.
명목상 ‘영어’ 캠프를 내세우지만 수학, 과학 등 교과과목부터 대입 준비까지 아우르는 학교도 많았다. 교육부 운영 기준에 따르면 영어캠프는 외국어 향상을 위한 체험 중심의 운영을 원칙으로 하고 학교 교과를 변형한 수업을 실시하는 입시 준비 과정은 포함시킬 수 없다. 하지만 대원외고, 명덕외고, 과천외고 캠프에서는 ‘창의적 연구’ ‘탐구학습역량활동’ 등 명칭으로 소논문 작성 교육을 진행했다. 소논문은 최근 대학 입시에서 학종 비중이 늘면서 중ㆍ고등학생들이 힘을 쏟는 분야다. 적성검사나 진로 컨설팅 교육을 하는 학교도 7곳이나 됐다.
참가비가 한 학기 대학 등록금 수준에 달해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른 정보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점도 문제다. 닷새에 5만원(인천외고)을 받는 소액 캠프도 있었지만, 대부분 100만원이 넘었고 용인 외대부고의 경우 400만원에 육박(24일ㆍ396만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단순 계산으로 추정하면 민사고의 경우 매 방학마다 학생 350명이 350만원씩 내기 때문에 연 24억5,000만원(1년에 2회 개최) 매출을 올리는데 회계처리는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교육 당국이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가 교육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등 자체 자정 노력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교육 형평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만큼 세밀한 규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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