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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의사는 천직, 문학은 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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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의사는 천직, 문학은 열정입니다

입력
2014.08.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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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간 환자 돌본 비뇨기 전문의

민족애환 시·수필 창작활동 활발

고교 시절부터 써온 작품 230여편

故김동진 경희대 음대 교수 곡에 창작시 입힌 가곡 모아 '초심'발표

4년 뒤 시집 발표하며 퇴임 할 것

장성구 경희대 의대 교수가 13일 연구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 교수 앞쪽의 CD가 가곡집 <초심>이며, 뒤편의 시화 작품 <푸른 여명>은 <초심>의 삽입곡 중 하나다
장성구 경희대 의대 교수가 13일 연구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 교수 앞쪽의 CD가 가곡집 <초심>이며, 뒤편의 시화 작품 <푸른 여명>은 <초심>의 삽입곡 중 하나다

“기쁨 보단 어깨에 무거운 짐을 가득 올려 놓은 심정입니다.”

13일 경희의료원 연구실에서 만난 장성구(62ㆍ비뇨기 종양학)교수는 3시간여에 걸친 방광암 수술을 집도한 직후였던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시와 수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금세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장 교수는 지난 12일 문학시대 제102회 신인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다.

1971년 전문의로 첫 발을 내디딘 이후 43년 동안 ‘의업은 천직’으로 여기며 수 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후배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따로 떼 놓지 않은 게 바로 문학에 대한 열정이다. ‘늦깎이 신인상’을 받은 데 대해 장 교수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종이에 옮겼을 뿐, 문학상을 바랐던 건 아니다”며 “오히려 수상할 만한 자격이 되는지 조심스럽고 삼가는 마음”이라며 몸을 낮췄다.

지난 2월에는 ‘한국의 슈베르트’ 고 김동진(1913~2009) 선생의 곡에 자신의 시를 입힌 가곡 12편을 모아 유명 성악가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초심이라는 CD앨범을 냈다. 경희대 음대 교수로 정년 퇴임한 김 선생과는 배뇨 치료를 위해 2000년 장 교수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장 교수가 평소 시와 수필을 쓴다는 사실을 듣고 김 선생이 먼저 “곡을 붙여 주겠다”고 제안했다. 부담감에 손사래를 쳤지만 나중엔 “왜 시를 갖고 오지 않느냐”며 역정까지 내는 바람에 뜻을 꺾지 못했다고 한다. 장 교수는 시를 건넸고 이후 김 선생은 2005년까지 12편의 가곡을 작곡했다. 지금은 유작이 된 고향의 달, 2003년 한국, 도솔천 등이 이 CD에 고스란히 담겼다.

고교 2년 때부터 써 온 작품이 시 80여 편, 수필 150여 편 등 무려 230여 편에 달한다. 창작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대학 1, 2 학년 때는 주인 없는 무덤이라는 단편 소설로 모 신문사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시절 작품들을 컴퓨터 문서화하고 있다. “예전 원고를 하나하나 찾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노라면 질풍노도의 고교 시절, 자유분방했던 대학 시절 등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몰래 엿보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엔 ‘작은 보물’을 하나 찾았다. 의대 1학년 시절 오늘 흐르는 강이란 시 한편을 강원일보에 투고했는데 지면에 게재됐다고 한다. “최근 문득 생각이 나 강원일보 측에 문의했더니 아쉽게도 지면으로 남아 있는 건 없었어요. 다행히 인터넷 파일로 보관해 둔 것이 있었죠”

글감은 주로 병원에서 얻었다. 특히 전공의 때 집필한 수필 여명의 두 얼굴에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담겨 있다. 투병중인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이식하기로 한 20대 초반의 딸이 있었는데, 당시 어머니는 ‘옆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딸의 희생을 강요했다고 한다. “마치 빚쟁이가 빚을 받아내려는 듯한 고자세로 딸을 대했어요.” 보다 못한 장교수는 수술 당일 아침에 딸이 병원에서 도망치려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물론, 병원은 발칵 뒤집혔고 그 환자는 투석치료만 계속해야 했지만 장 교수는 그때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의 희생을, 딸은 어머니를 도울 수 있음을 서로 감사해야 하는 게 인지 상정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장 교수는 작품에서 “(그 어머니의) 마음이 비계덩어리 같다”고 표현했다. 지금도 글감을 얻기 위해 지방에서 학술대회가 열리면 기차나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사람 사는 냄새도 맡고 이런저런 사색에 젖어 들다 보면 순간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오는 2018년 정년 퇴임식에서 시집을 한 권 발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장 교수는 “평범한 의사가 대단하지 않은 실력을 뽐낸 시집 한 권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작은 역사로서의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활짝 웃었다.

경희대병원장, 대한암학회 회장, 대한비뇨기종양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장 교수는 그동안 주로 민족의 애환과 함께 미래를 염원하는 시를 창작, 현대 문학, 월간 창조문예, 필향 등에 시와 수필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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