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2차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증인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며 출석하지 못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많은 이유가 ‘아파서’였습니다. 증인들이 국회 국정조사특위 앞으로 보낸 불출석사유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거의 ‘종합병원’을 하나 차려도 될 듯 싶을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달린 청문회인데도 나오지 않아 ‘팥 없는 단팥빵 청문회’를 만든 장본인인 최순실씨는 직접 쓴 불출석 사유서에 ‘공황장애’를 이유로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씨는 ‘공항장애’라고 적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최순실은 우리한테 보낸 불출석사유서에 공황장애를 이유로 들었는데,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하 의원은 “12월 5일 필기한 사유 서명서에 글씨가 정서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쓴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또박또박 쓰여 있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고, 또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하 의원은 “최씨는 무엇보다 공황장애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공항장애’라고 적어놨다.”며 최씨의 출석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최씨가 청문회에 나오기 어렵다는 이유를 든 게 하필 ‘공황장애’이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여론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최씨의 조카이자 언니 최순득의 딸인 장시호씨는 “심한 하열 증세와 통증(수술부위)”을이유로 출석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의 한 사람인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 수면장애와 위십이지장염 구토를 동반한 구역 두통 증상으로 도저히 증언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이유를 댔습니다.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11월에 강원대병원에서 항인지질 증후군, 뇌경색 등의 병명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고, 12월 2일 복시현상과 뇌경색 전조 증상으로 복통에 고열로 강원대병원에 재입원하여 치료 중”이라며 “치료를 일시 중단할 경우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은 “2015년 행한 신장암 수술 및 당뇨병 공황장애 등으로 인하여 계속하여 약물을 복용하여야 하는 등 현재 건강상태가 몹시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신성대암(후두암) 발병으로 2013년 8월 16일 연서대 의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후두암 레이저 절제수술을 시행 받았고 이후 재발성 후두암 소견으로 2016년 3월 16일 후두암 레이저 절제수술을 재차 시행하였으나 외래추적 관찰 결과 그 경과가 좋지 못하여 2016년 12월 5일 재수술을 시행하여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위 수술을 시행하게 되면 약 2주간 지속적인 약물 치료와 음성 휴식 및 안정가료가 필요한 상황이기에 국정조사 증인 출석이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자식 사랑’을 이유로 청문회에 못 나오겠다고 밝힌 이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고리 3인방인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발신인(제) 자녀는 현재 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바, 귀 위원회에서 방송을 통해 발신인의 증언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어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고 나아가 사춘기로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자녀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친 것이 자명한 바, 발신인 및 가족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다분하기에 위원회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못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최순실씨의 조카이자 최순득씨의 아들인 장승호씨는 베트남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부모 미팅 일정’ 미리 잡혀 있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교육사업가로서 ‘교육’을 불출석 사유로 삼은 것인데요. 장씨는 5일부터 9일까지 학부모들과 사전 일정 조율을 통해 미팅을 정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변경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장씨는 “▦매 학기 1번 이루어지는 학부모와 미팅은 유치원 다음 해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 ▦청문회 출석을 하려면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 ▦제가 지금까지 미팅을 진행했고 유치원 인력 구조상 저를 대신하여 미팅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점 ▦학부모 상당수가 베트남인, 외국인으로 현재 제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청문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사유서를 보냈습니다.
지금 재판 중이니까 나가지 못하겠다는 ‘단도직입 형’도 있습니다. 문고리 3인방의 마지막 인물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국정조사에 출석하여 위원님들의 질의에 성실히 답변드리고 싶지만 출석 요구서의 심문 요지 사항인 ‘청와대 및 정부부처 문건 유출 등’에 대하여 현재 행사재판 중이고 특검 수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진술이 어려운 관계로 출석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요. 한 술 더 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조특위가 증인 본인에게 전달해야 하는 ‘출석 요구서’자체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날 “우 전 수석이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 집에 있다”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보를 받은 국회 관계자들이 김 회장 집으로 찾아갔지만 역시 우 전 수석을 만날 수 없었는데요. 마음 먹고 ‘숨바꼭질’을 하려는 우 전 수석을 찾을 도리가 없는 국조특위 측은 “일부러 찾지 않는다”는 오해까지 받고 있지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증인은 원래 지니고 있던 병이든 검찰 수사나 세상의 집중된 관심 때문에 빚어진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병이든 이유야 어찌 됐던 많이 아픈가 봅니다. 그리고 많이 바쁘고 못난 아버지 탓에 마음 아파할 딸이 걱정이 되나 봅니다. 그러나 그런 자신들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는 듯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새로 갖게 된 국민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와서 변명이든 해명이든 하려 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저 뿐만이 아니겠죠.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보가 아닌 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심지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차 “저도 몸이 많이 좋지 않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부르면 와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김 전 실장이 국회 청문회에 등장해 ‘모르쇠’답변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나 마나’라는 말도 나오지만 그래도 ‘나와서 먹는 욕’보다 ‘안 나와서 먹는 욕’이 더 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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