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수요 억제 대책’ 예상에
강남권 거래는 올스톱·시세 하락
非강남 지역에 투자자들 북적
23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뉴타운 아이파크’ 견본주택 앞은 이른 오전부터 관람객들이 100m 이상 대기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날 하루 견본주택을 다녀간 1만2,000여명 가운데는 아이들과 함께 온 30대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두 살배기 아이를 안고 온 김현기(36ㆍ영등포구 문래동)씨는 “지금 사는 집이 아이 키우기에 좁기도 하고, 전부터 새 아파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소식이 다소 신경은 쓰이지만, 강북까지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역 메이저타운 푸르지오’ 견본주택도 2만여명의 방문객으로 북적댔다. 인근 시흥시에서 ‘원정’ 온 60대 남성은 “정부가 또다른 부동산 대책을 내놓기 전에 분양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집값 과열을 막기 위한 정부의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 정밀 규제가 임박하면서 강남과 비(非)강남 부동산 시장의 온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거래 자체가 끊긴 강남권과는 달리, ‘정부의 관심 밖’으로 여겨지는 서울 강북과 수도권 분양 시장엔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는 이른바 ‘풍선 효과’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냉각 우려에 정부가 “강한 규제를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면서 최근 비강남권으로 번지는 과열현상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거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23일 정부와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집값이 단기 급등한 과열 지역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수요 억제 대책’을 검토 중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 등 일부 지역에만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기존 6개월(민간택지 기준)에서 1년으로 연장하고 ▦1순위 청약자격을 강화하는 등의 규제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다음달 초엔 공식대책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규제 시그널에 강남 재건축 시장은 바짝 얼어 붙었다. 개포주공1단지 전용 42㎡는 최근 일주일 사이 시세가 2,000만원이나 하락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 3주차(17~21일)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률(전주 대비 0.1%)은 일주일 전(0.42%)보다 뚝 떨어졌다.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이다. 거래 역시 ‘올스톱’ 상태다. 강동구 둔촌동 한 중개업소 대표 또한 “최근엔 집을 사거나 팔겠다는 문의 전화 자체가 없다”며 “매수ㆍ매도자 모두 ‘일단은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면 정부의 규제 타깃에서 벗어나 있는 강북과 수도권 지역엔 ‘강남발 불길’이 본격적으로 옮겨 붙는 분위기다. ‘신길뉴타운 아이파크’(3만여명) ‘초지역 메이저타운 푸르지오’(7만여명) ‘서동탄역 더샵 파크시티’(3만여명) 등 지난 주말(21~23일) 주요 견본주택마다 수만명의 인파가 몰린 게 단적인 예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신촌숲아이파크’ 1순위 청약은 평균 75대 1을 기록하며 올해 강북권 최고 경쟁률을 갈아치웠다. 때문에 현장에선 “‘신길뉴타운 아이파크’ 조합원들이 집값 상승을 노리고 매물(입주권)을 내놓지 않을 정도로, 규제는 우려하는 분위기가 아니다”(신길동 I공인중개업소 대표), “정부 규제 이전 막차 수요가 몰리면서 시흥, 안양, 부천 등에서도 원정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초지동 D공인중개업소 대표) 등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강남으로 번지는 과열 현상의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갈 곳 없는 시중 투기자금이 강북과 수도권 지역으로 우르르 이동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고 말했고, 양지영 리얼투데이 실장은 “강한 규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분양시장 열기는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1%대 저금리와 1순위 청약자 1,000만명 시대에 사업성 좋은 지역이라면 언제든 강남 재건축 같은 이상 과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강남 일부만 타깃으로 한 규제보다는 전국에 적용할 포괄적인 수요 억제책이 나와야 투기판으로 향하는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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