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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지옥’ 등급 받아도 알 수 없다… 더 복잡해진 재건축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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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지옥’ 등급 받아도 알 수 없다… 더 복잡해진 재건축 방정식

입력
2018.03.07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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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등급 기준 40%→60% 상향

목동 14단지 ‘E등급’ 0→7곳 늘어

원안보다 5%p 비중 높였다지만

총점 반영 비율은 종전보다 후퇴

“산수도 못하는 줄 아나” 부글부글

예전에 지은 아파트 동간 거리 넉넉

‘소방활동 용이’ 항목도 영향 미미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재건축 예정 아파트 단지 안에 “정밀진단을 추진한다”는 취지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재건축 예정 아파트 단지 안에 “정밀진단을 추진한다”는 취지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서울 목동과 상계동 등 비(非)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절충안이 오히려 재건축 시장의 방정식만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차가 어렵고 소방차가 진입하기에도 힘든 곳의 안전진단 평가 가중치를 높여 재건축 주민들을 배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들 가중치의 영향력이 미미해 사실상 재건축이 힘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미봉책에 주민들 불만은 더 커지고 있어 재건축 안전진단을 둘러싼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재건축 안전진단과 관련, 정부 절충안의 핵심은 전체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주거환경’ 평가 에서 주차 대수를 전체 가구수로 나눈 ‘최소주차 대수 비율’을 40%에서 60% 미만으로 상향한 것이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은 이를 160%(충분)부터 5개(A~E) 구간으로 나눠 등급을 매기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가 0점에 해당하는 최하등급의 기준선을 20%포인트나 올렸기 때문에 산술적으로는 E등급 판정 단지가 자연히 늘어나게 된다. 6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전국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인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14단지의 경우 단순 40%룰을 적용할 때는 최하등급이 한 곳도 없지만, 60%로 상향하면 7개 단지가 E등급을 충족하게 된다. 총 13개 단지로 구성된 노원구의 상계주공아파트 역시 2개에서 8개로 E등급 단지가 증가한다.

문제는 주차 환경에서 E등급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재건축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주차 문제는 총 9개로 구성된 주거환경 평가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절충안에서 주차 문제는 지난달 20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방안’의 가중치 원안(20%)보단 5%포인트 비중이 높아졌다. 그러나 원안과 절충안 어디에도 주차문제에서 E등급이 나오는 것을 곧바로 ‘재건축 무조건 허용’으로 규정하진 않고 있다. 주차문제를 포함해 9개의 주거환경 평가 전체의 총합이 20점 미만일 경우에만 재건축을 허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주차문제에서 최하 등급으로 0점을 받아도 나머지 8개 항목에서 20점 이상이 나오면 재건축은 불가능하다. 결국 전체 안전진단 평가에서 20%에서 50%로 상향 조정된 구조안정성 평가 점수가 재건축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는 것엔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전체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점수를 100점으로 놓고 보면 복잡하게 오르고 내린 주차문제 가중치는 오히려 종전보다 줄어들었다. 주거환경 40%에, 이 중 주차문제 가중치가 20%를 차지하던 종전에는 전체 안전진단 항목에서 주차문제가 8점의 영향력을 가졌다. 하지만 현행 기준은 주거환경이 15%로 크게 낮아지면서 주차문제 가중치가 25%로 늘어났음에도 전체적으로는 3.75점 밖에 영향을 못 준다. 비강남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대목이다. 서울 양천ㆍ노원ㆍ마포ㆍ강동구 재건축 단지 주민들의 협의체인 비강남권 차별 저지 국민연대 관계자는 “정부는 주민들이 산수도 못하는 바보인 줄 아느냐”며 “영향력이 없다 못해 줄어든 안을 내놓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고 발표하는 모습에서 전반적인 신뢰가 무너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국민연대는 최소 주차대수 산정 방식을 등록 차량대수로 바꾸고 이 부분 가중치도 더 높여줄 것을 국토부에 다시 요구할 방침이다.

주차문제와 함께 주거환경 평가항목에서 배점이 25%(원안 17.5%)로 높아진 ‘소방활동 용이성’ 가중치도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방활동 용이성은 화재 발생 시 소방차가 진입해 주차가 가능한 도로 폭 6m를 재건축 단지가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6m를 아예 충족 못하면 최하등급이고, 6m는 충족해도 실제로 소방차 진입이 어려울 경우에는 그 다음 등급을 받는다. 그러나 건설업계 관계자는 “1980년대에 지어진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지하 주차장이 없는 대신 동과 동 사이를 넓게 둬 외형적으로 6m 진입로는 대부분 갖췄다”며 “통상 안전진단 평가업체도 이를 감안해 6m보다 이ㆍ삼중 주차 문제의 심각성을 잣대로 삼고 있는데 아직 객관화된 지표가 없어 판단이 들쭉날쭉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평가업체들이 공기관인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의 의지에 따라 소방활동 용이성의 잣대가 춤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국토부는 시장의 플레이어로 참전해 작은 것 하나하나 만지는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라 중ㆍ장기적 관점에서 지자체에서 올라 온 보고와 정책을 큰 틀에서 조정ㆍ운용해야 하는 곳”이라며 “구청 단위로 지역별 재건축의 특수성을 파악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취합해 정책 내용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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