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보안번호 알려준 게 직접 원인”
“의정부지검 수사관입니다. 저축은행 사건 수사 도중 이주현(가명)씨 은행 계좌에 2억원이 입금돼 공범 여부를 수사 중입니다.”
이씨는 2012년 1월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검찰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공범’ 운운하자 이씨는 겁부터 났다. 결국 남성의 요구대로 은행계좌번호와 인터넷뱅킹 보안카드번호 등 금융거래정보를 알려줬다. 얼마 뒤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주택청약예금 600여만원이 빠져나가는 등 2,800여만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가 알려준 금융정보를 가지고 인터넷뱅킹을 해 예금을 해지하고 돈을 빼간 것이다. 이씨는 은행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도 예금을 해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탓. 있는 이를 알려주지 않은 은행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냈다.
1ㆍ2심 법원은 “인터넷뱅킹을 통해 예금이 해지되고, 그 예금이 범인의 통장으로 이체된 것은 은행의 관리상 잘못”이라고 인정, 은행으로 하여금 이씨에게 피해액 중 1,72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인터넷뱅킹을 통한 예금 해지 서비스가 악용된 건 맞지만 보이스피싱 원인은 아니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예금해지 서비스는 금융사고에 악용됐을 뿐 금융사고의 발생이나 확대의 원인이 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면서 사건을 원심 재판부로 돌려보냈다. 이어 “인터넷으로 예금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씨가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만큼 은행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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