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 수가 하나 둘씩 늘어나던 지난 주 내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했다. 지하철에서 들리는 기침 소리는 출근 길의 단잠을 깨웠고, 슬그머니 옆 칸으로 자리를 옮기게 만들었다. 새집 장만의 꿈을 안고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구경 갔을 때는 비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호흡이 섞이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혹시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던 사람이 있진 않을까, 근거 없는 불안감이 내 생각을 지배했다.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빽빽하게 모인 사람들 틈에서 고개를 돌리고 숨을 참느라 얼굴이 벌개지기도 했다.
전염병이 진짜 무서운 것은 질병 자체로 인한 고통보다, 질병에 대한 공포로 발생하는 사회적 혼란과 위기라고 한다. 이 공포는 개인과 사회를 비이성적(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위기에 빠져 결국 멸망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아즈텍 제국 이야기가 떠올랐다. 16세기 초 인구 30만의 대도시를 가진 아즈텍 제국에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병사 600여명이 쳐들어 왔다. 아즈텍 제국은 30배나 많은 병력으로 첫 전투에서 크게 이겼지만 이후 아즈텍 병사들이 괴질에 걸려 죽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 괴질은 천연두였다. 스페인 병사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갖고 있었지만, 아즈텍 사람들은 스페인 병사들에 ‘묻어 온’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얼마 안가 아즈텍 제국 전 인구의 4분의 1이 죽었고, 스페인 병사들은 손쉽게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의 확산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신념 체계도 무너뜨린다. 당시 아즈텍 사람들은 수준 높은 문화와 대제국을 가졌지만, 대재앙 속에서 유독 자신들과 싸우는 스페인 사람들만 멀쩡한 것을 보고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믿던 신을 버리고, 스페인 사람들의 신앙과 지배를 함께 받아들였다. 8만 대군을 거느렸던 잉카 제국이 1531년 피사로가 이끄는 180명의 스페인 군대에게 무너질 때도 과정은 비슷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나라를 무너뜨릴 정도이니, 메르스와 관련된 괴담을 차단해 국민들의 공포를 없애는 것은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국내 첫 감염자 발생 이후 메르스에 대한 보건 당국의 설명은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감염은 환자와 밀접한 접촉이 있는 제한된 경우에만 발생하고, 밀접 접촉자들도 자가(自家) 격리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환자와 가까이 접촉하지 않았던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보건 당국은 “지역사회로 퍼질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기억나는 변화라면 메르스 대책회의 총괄자가 질병관리본부장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나중엔 장관으로 바뀐 것 정도다. 정부가 대책 회의의 위상을 ‘격상’하는 동안,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던 환자는 열이 기준보다 낮다는 이유로 검사를 거부당했다가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았고, 최초 환자와 같은 병실에 머물렀던 2차 감염자는 당국의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중국에 입국했다.
격리 대상자가 아니어서 자유롭게 사람들과 접촉했던 환자가 11명이나 발생했는데도 정부관계자들은 “원점에서 처음부터 재조사를 했기 때문에 놓칠 수 있었던 감염자를 찾아냈다”며 ‘성과’를 강조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4월 미국에 첫 메르스 환자가 유입됐을 때 미국 검역 당국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메르스가 언젠가는 미국에 도착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이 한 마디가 미국의 신속한 대응을 말해준다. 그 환자는 11일만에 퇴원했고, 메르스 추가 감염자는 없었다.
우리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 중앙방역대책반을 운영한 것은 2013년부터라고 한다. 그런데도 결과는 이렇다. 우리 방역 시스템은 어떤 명쾌한 설명도, 믿음도 주지 못하는데, ‘괴담 유포자’부터 처벌하겠다니. 모든 불안은 지나친 걱정과 예민함 탓이겠지만, 우리 보건 당국을 생각하면 한숨과 공포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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