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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노동자 괴롭히는 유연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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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노동자 괴롭히는 유연근무제

입력
2015.02.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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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파파이스 등 비용 절감 위해 근무 스케줄 뒤늦게 통보 다반사

육아·투잡 구하기 어려워 낮은 시급 만큼이나 생활고 부채질

우리나라에서도 차츰 확산되고 있는 유연근무제가 턱없이 낮은 시급만큼이나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월마트 직원들은 최근 시급이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대부분 미국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위태롭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워싱턴시 교외 한 상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팻매타 재비(21)는 시급 8.8달러를 받는다. 일주일에 꼬박 18~30시간을 일하지만 싱글맘인 그가 아이와 생활을 꾸리기엔 늘 부족하다. 미국의 다른 저임금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아니면 정부 보조금에 기대 보육비와 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그는 “나는 싱글맘이라 책임이 무겁다”며 “내 렌트비와 공과금, 식료품비를 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임금 말고도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근무 스케줄을 업체에서 일방적으로 변경하기 때문에 시간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싱글맘에겐 특히 심각한 문제다.

비정부단체(NGO)인 공정한 일자리(Jobs with Justice) 책임자인 에리카 스마일리는 “미국 실질 중위가계소득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좀처럼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월마트를 비롯해 임금 인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임시직 노동자들은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개 근무가 임박해서야 근무 스케줄을 통보 받다 보니 낮은 시급과는 별개로 생활을 꾸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근무 스케줄을 촉박하게 통보하는 것은 인력이 필요할 때만 고용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용주들에게는 비용 절감 효과가 크지만, 임시직 입장에서는 육아나 다른 직업을 추가로 얻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 고용시장에서 구인 요구가 크게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00만명에 달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풀타임 일자리를 찾고 있어 노동시장의 수급 불일치가 심각하다.

지난해 시카고대 연구에 따르면 시급을 받는 26~32세 노동자들 중 41%가 근무시간대 변동을 일주일 전이나 심지어 그보다 더 임박해서 통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중 80%는 ‘주간 근무량이 급격히 변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 어반 아웃피터스나 패스트푸드 체인 파파이스가 직원들에게 바뀐 근무시간을 임박한 시간에 통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학생 미셸 플로어스는 “내 스케줄을 예측할 수 없으면 공부나 내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을 만들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연근무제를 연구하는 수잔 램버트는 “스케줄을 예측할 수 없어 가정 운영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지고 그것은 노동자의 삶에 커다란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사 델라우로 민주당 하원의원은 조만간 이처럼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노동시간 변경을 강요하는 업체들을 처벌하는 법 제정에 나설 계획이다. 델라우로 의원은 “공공정책이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보육을 담당하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급격한 스케줄 변동을 방지하기 위한 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시에선 고용주가 임시고용된 노동자에게 최소한 2주 전에는 바뀐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도록 제도화했다.

대형 유통업체나 패스트푸드 체인 등 저임금 임시직 고용비중이 높은 업체들은 유연근무제가 노동자들에게 큰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닐 트라우트웨인 전미소매업협회 부회장은 “파트타임 일자리는 일과 학교, 가족 혹은 또 다른 일자리를 조율하기에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코리 런더버그 월마트 대변인도 “최소 2일 혹은 3~4일 전에 알려줘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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