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50회로 대장정 마무리…’뿌리 깊은 나무’ 팬들에 깜짝 엔딩
“가장 힘들었던 작업” ’척사광 외전’ 등 준비했는데…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와 3부작 연결 “작가로서 한 풀어”
“차기작? SF 같은 사극 준비”

‘급히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요.’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박상연(44) 작가가 일요일인 지난 20일 오전 6시21분에 휴대폰 문자를 보내왔다. 오후 4시에서 오후 5시로 인터뷰를 한 시간 늦춰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날 서울 여의도에 있는 작업실에 만난 박 작가는 “드라마 마지막 회 대본은 14일 탈고했는데, 엔딩 장면의 유아인 마지막 대사를 고민하다 수정하고 오느라”며 웃었다. ‘육룡이 나르샤’를 함께 쓴 김영현(50)작가와 박 작가가 살짝 손을 봤다는 마지막 회에는 두 작가의 전작인 ‘뿌리 깊은 나무’(2011)를 봤던 시청자들이라면 깜짝 놀랄 ‘선물’이 담겨 있다.
이달 들어 평균 시청률 16%(닐슨코리아)를 웃돌며 지상파 방송3사 월화드라마 왕좌를 지켜 온 ‘육룡이 나르샤’가 22일 50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육룡이 나르샤’는 실험적인 사극이었다. 두 작가는 20대 청춘 스타인 유아인을 내세워 이방원에 새 옷을 입혔다. 배우 유동근이 ‘용의 눈물’(1996)에서, 김영철이 ‘대왕세종’(2008)에서 보여줬던 중후했던 이방원과 달리 젊고 여린 이미지가 강한 배우를 캐스팅해 반전을 줬다.
“역사 속에서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게 이방원의 나이 스물 여섯 때예요. 지금으로 따지면 군대 다녀와 복학한 대학 3학년 학생쯤 되는 건데, 이 나이에 나라를 뒤집을 생각을 했다는 게 신선했어요. 그래서 젊은 배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유아인을 섭외했죠. 2008년에 ‘최강칠우’란 사극을 했는데, 유아인이 칼도 잘 쓰고 사극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섭외 후 유아인이 나오는 영화 ‘사도’와 ‘베테랑’을 봤는데 보고 나서 확신이 섰죠”(김 작가).
배우 섭외만 파격이었던 게 아니다. 두 작가는 전작인 ‘선덕여왕’(2009)과 ‘뿌리 깊은 나무’(2011)속 이야기를 ‘육룡이 나르샤’에 녹였다.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린 ‘육룡이 나르샤’에서 나라 설립의 방향을 좌지우지 하는 비밀조직 밀본과 무명이 나오는데, 이 조직들의 뿌리와 활약 등을 앞의 두 작품에서 끌어와 세 드라마에 다리를 놓은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 세계관을 공유하는 인물과 조직들이 여러 드라마에 함께 나오는 국내 사극을 만든 건 김ㆍ박 작가가 처음이다. 이를 두고 박 작가는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을 만드는 건 작가로서 오랜 꿈”이라고 했다.
“어려서 (일본 애니메이션)‘은하철도 999’를 보는 데 하록 선장이 나와 놀란 적이 있어요. 다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나와 두 작품의 이야기가 겹치는 게 짜릿했죠. 김 작가가 MBC ‘테마 게임’할 때 이 방법을 쓰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역사는 이어진 얘기잖아요. 그래서 사극이란 장르에도 적합할거라 생각하고 시도해 본 거죠. 작가로서 한을 풀었네요. 하하하”(박 작가).
‘육룡이 나르샤’는 김명민 유아인 신세경 등 초호화 캐스팅에, 드라마 제작비로는 이례적인 300억 원이 투입돼 ‘사극판 어벤져스’로 불렸다. 방송 내내 시청률 10%대 중반을 유지하며 선전했지만, 기대엔 못 미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평균 시청률 25%~45%를 오간 두 작가의 전작과 비교해 시청률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박 작가는 “전 작품들 보다 대중적인 공감을 덜 얻은 건 아쉬운 점”이라고 인정했다. 극중 인물이 6명이 나 돼 이야기가 산만했던 것도 드라마의 약점이었다. 비담(‘선덕여왕’)과 무명의 연결 고리와 척사광 등 가상 인물들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이야기도 살짝 덜컹거렸다. 김 작가는 “주인공으로 6명을 내세우다 보니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치는데 고민이 많아 역대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칠 시간과 공간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는 고충도 털어놨다. 두 작가는 ‘선덕여왕’ 속 비담(김남길)과 무명 사이에 얽힌 역사를 비롯해 척사광 외전 같은 별도의 캐릭터 얘기까지 준비했으나 담지 못했다.

김ㆍ박 작가는 이영애(‘대장금’·2003)를 비롯해 고현정(‘선덕여왕’), 한석규(‘뿌리 깊은 나무’) 등 시대를 대표했던 배우들과 작업해왔다. 두 작가는 한석규와의 첫 만남을 가장 강렬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드라마 섭외를 위한 첫 만남의 자리에서 한석규가 ‘연산의 마음을 가진 세종을 연기하고 싶다’고 한 일성이 아직도 선명하다는 게 두 작가의 말이다. 고현정을 두고서는 “작가와 배우의 교감이 얼마나 짜릿한지 처음 알게 해 준 배우”라고 했다.
“‘선덕여왕’에선 마치 고현정씨와 싸우듯 대본을 썼던 것 같아요. 대본을 주면 고씨가 우리에게 ‘어, 너네 이렇게 썼어’라며 그 이상을 보여줘 놀라고, 그러면 우린 ‘이거 할 수 있겠어’라고 던지는 식이었죠. 유아인씨는 우리가 고민하던 대목에 연기로 그 방향을 알려 준 배우였어요. ‘이야기에 방해되면 내 분량 신경 쓰지 말고 빼세요’란 쿨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요.”
김ㆍ박 작가가 처음 만난 건 2001년이다. 김 작가는 미니시리즈 ‘신화’를 준비하며 구상이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을 때였고, 박 작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영화계에서 신진 작가로 주목 받던 때였다. 이종석 주연의 ‘피노키오’를 쓴 박혜련 작가의 소개로 처음 만나 공동작업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이제 “오누이”나 다름 없다. 박 작가는 “군대 내무반 동기도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을 것”이라며 “하루 16시간을 얼굴을 본다”라고 농담 어린 말을 할 정도다.
“박혜련 작가와 PC통신 나우누리 퀴즈동호회를 같이 했거든요. 그 인연으로 김 작가님을 처음 봤어요. 운동권 얘기하면서 친해졌죠. 그 때 김 작가님이 ‘너희 학번 애들도 운동권을 알아?’라고 물어 제가 ‘당신들 386세대들이 뭘 알아’라고 맞받았죠. 둘이 회의할 땐 매일 같이 싸워요. 그래도 같이 작업 하는 건 사극에 대한 애정이 크고, 서로가 달라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죠. 제가 무협에 강하면, 김 작가님은 멜로에 강한 식으로요”(박 작가).
욕하는 세종(‘뿌리 깊은 나무’)과 낭만 넘치는 이방원(‘뿌리 깊은 나무’)을 만든 두 작가는 차기작으로 또 다른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선덕여왕’-’뿌리 깊은 나무’-’육룡이 나르샤’ 3부작의 세계관을 벗어나 “SF(공상과학) 같은 사극”을 준비 중이란다. 기존 사극에선 볼 수 없던 시대에 접근해 파격적인 사극을 계획 중이라는 설명이다. 2018년 방송이 목표다.
“‘육룡이 나르샤’를 끝으로 (방송사와의 기존)계약도 다 털고 자유로운 몸이 됐거든요. 정말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요. 구상중인 신작은 역대 최고의 제작비가 들 것 같아요.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채널 가리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하게 고민해볼 생각이에요”(김ㆍ박 작가).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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