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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돈을 풀면 경제구조가 바뀝니까?

입력
2014.07.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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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머리 속에 있는 건 모두 다 밀어붙인 듯싶다. 무려 40조원이 넘는 돈을 풀기로 했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규제도 왕창 풀었다. 한국은행의 독자적인 판단이든 아니든 최 부총리가 희망하는대로 조만간 기준금리도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단 하나 제외된 건 법적인 요건이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강행한다 해도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된 추가경정예산(추경) 뿐이다. 정부 대책의 타이틀 역시 매년 해오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 아니라 ‘새 경제팀 경제정책방향’이다. 자신감, 그리고 의지가 팍팍 묻어난다. 이러니 뭔가 달라지겠구나 싶은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역시 ‘최경환’이다 싶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돈을 풀고 규제를 풀면 경기가 부양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몰라서 못하는 대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느 정부건 그런 확장적인 경기부양책의 충동을 느낀다. 그래도 신중하게 재고 또 재는 건 돈이든 규제든 풀어놓으면 그 후유증을 감수해야 하는 탓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겠는가. 돈을 더 썼으니 나라 재정은 어려워질 것이고, 빚을 내라고 부추겼으니 가계부채는 늘어날 것이다. 돈의 힘으로 만들어진 가격 버블은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 경기를 살리자는데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과연 지금이 앞뒤 가리지 않고 그런 리스크를 덥석 떠안아야 할 국면인지는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1, 2, 3월 : “우리 경제의 회복조짐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4월 : “우리 경제의 회복조짐이 이어지고 있다.”

5월 : “전반적으로 완만한 회복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6월 : “완만한 회복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7월 : “경기 회복세가 부진한 모습.”

올 들어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일명 그린북(경제동향)의 경기 인식 변화를 보자. 미국의 ‘베이지북’처럼 정부의 경기 인식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매우 무게감있는 보고서다. 세월호 참사로 조금씩 강도가 약해지긴 했지만, 적어도 6월까지는 우리 경기가 회복 국면이라는 게 정부의 진단이었다. 그리고 7월, 그린북에 ‘부진’이라는 진단이 추가된다.

경기가 확 살아나지 못하고 다시 주춤하고 있으니 답답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히 해둬야 할 건 지금 경기는 회복세가 부진한 것이지, 경기 둔화 혹은 침체 국면에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정부 진단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그 부진도 장기간 지속된 것이 아니라 이제 딱 한 달일 뿐이다. 하반기에는 세월호 참사의 여파를 딛고 소비를 비롯한 경기가 다시 서서히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도 있다. 과연 지금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과감하고 화끈하게 모든 걸 다 풀자”고 할만한 상황이냐는 데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물론 최 부총리는 지금의 경기부진이 심각한 건 구조적이고 복합적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임금상승 둔화, 600만명에 달하는 저임금 비정규직, 기업들의 투자 외면 등의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얽히고 설키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만큼은 100%, 아니 120% 동의한다.

그러나 진단과 대책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있다. 대책의 내용을 아무리 뜯어봐도 돈과 규제를 푸는 것 외에 눈에 띄는 것이 없다. 구조에 손을 대는 거의 유일한 대책이 기업 금고에 쌓여 있는 돈을 가계 등 실물로 흘러 들어가게 하겠다는 사내유보금 과세 및 인센티브 제도 도입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정부 의도대로 순순히 따를 거라고, 또 그렇다고 해서 돈이 가계로 흘러 들어갈 거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최 부총리가 경제구조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 대대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기 위한 명분 쌓기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팀 수장으로서 재임 중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싶어할 최 부총리는 그렇다 쳐도 여기에 누구도 제동을 걸려고 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지금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20조원이 넘는 돈을 퍼부은 4대강 사업 등의 후유증을 톡톡히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새 경제팀의 경제 정책방향 논의를 위한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최경환 경제 부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새 경제팀의 경제 정책방향 논의를 위한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최경환 경제 부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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