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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유쾌하게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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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유쾌하게 비틀기

입력
2017.12.14 09:4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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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동화, '오딧세이' 등 고전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다수 발표했던 마거릿 애트우드는 신작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비튼다. 리암 샤프 제공
그림형제 동화, '오딧세이' 등 고전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다수 발표했던 마거릿 애트우드는 신작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비튼다. 리암 샤프 제공

마녀의 씨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ㆍ송은주 옮김

현대문학 발행ㆍ432쪽ㆍ1만4,500원

거장이 만든 B급 영화를 본 느낌이랄까.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지목되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신작은 셰익스피어 ‘템페스트’를 유쾌하고 교훈적으로 비튼다. 400쪽 훌쩍 넘는 이야기는 대단한 흡입력을 자랑하지만 치밀한 사유나 촘촘한 구성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가의 유치 발랄한 상상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밀도 높은 문장이나 훈고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소설 속 결정적인 장면에서 인물들이 읊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대사를 읽으며 작가의 근성을 칭찬할지도 모르겠다.

왜 하필 ‘템페스트’를 비틀었을까. 사연은 이렇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가 설립한 출판사 호가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을 앞두고 2013년 당대 최고 작가들이 셰익스피어 대표작을 다시 쓰는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를 시작했고, 애트우드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트레이시 슈발리에, ‘스노우맨’의 요 네스뵈 등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가해 ‘템페스트’를 비틀기로 했다.

우선 템페스트의 줄거리. 밀라노 대공 프로스페로는 마법 연구에 골몰한 나머지 공국의 실무를 동생 안토니오에게 모두 맡긴다. 동생은 그 틈을 타 형의 정적인 나폴리 왕 알론소와 작당해 형을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한다. 프로스페로는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물이 새는 배에 태워져 표류하다 외딴섬에 도착하고, 그곳에 살던 정령 아리엘과 ‘마녀의 씨’라고 이름 붙인 괴물 칼리반을 마법으로 지배하며 복수를 꿈꾼다. 12년 후, 운명의 여신이 프로스페로의 적들을 그에게 불러들이고, 프로스페로는 폭풍우를 일으켜 적들이 탄 배를 난파시킨 뒤, 이들을 섬으로 유인한다. 한편 알론소의 아들 페르디난드를 미란다와 만나게 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도록 유인하기도 한다. 프로스페로가 죄인들을 벌하려는 순간, 죄인들의 악함과 어둠이 자기 안에도 있음을 인정하고 용서를 택한다.

애트우드의 손에서 부활한 현대판 프로스페로, 필릭스 필립스는 연극 축제를 총지휘하는 예술 감독이다. 그가 골몰한 건 ‘최고의 연극’. 행정 실무 같은 잡일은 당연히 오른팔 토니에게 일임한다. 그에게 불행이 온 건 결혼 1년도 안 돼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다. 외동딸 미란다마저 잃게 되자 연극에 대한 집착은 심해지고 급기야 죽은 딸을 위한 연극을 기획한다. 딸과 똑같은 이름의 주인공이 출연하는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려 미란다 아빠 역인 프로스페로를 직접 연기하기로 한 것. 연극 속 미란다는 죽지 않고 왕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거니까.

패러디 문법에 충실한 작가는 토니를 당연히 나쁜 놈으로 만든다. 토니는 필릭스와 적대관계인 샐 오낼리를 끌어들여 예술감독 자리를 차지하고, 필릭스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듯 밀라노 대공(Duke of Milan) 프로스페로를 연상케 하는 ‘듀크(Duke)’란 가명으로 위장해 살아간다. 8년 후, 우연히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셰익스피어 희곡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그는 4년째 되던 해 문화유산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하는 토니가 법무장관이 된 샐과 교도소 희곡 수업 시찰을 하러 오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필릭스는 12년 전 포기한 ‘템페스트’를 선보이기로 한다. 프로스페로 역을 직접 맡은 그의 구상은 교도소장 일행, 샐과 토니 일행, 샐의 아들 프레더릭을 각각 다른 방으로 유인해 복수하는 것. 교도소장 일행이 미리 촬영해 둔 ‘템페스트’ 재소자 공연 비디오를 보는 동안, 샐과 토니는 마취약이 섞인 음식물을 먹고 쓰러지는 ‘관객체험형 연극’을 경험하고, 프레더릭은 미란다 역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모든 건 의리 있는 배우와 필릭스에 꽂힌 여교수, 복수 플롯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죄수들이 있어 가능하다. “한국인인 듯한 안경을 쓴 순한 인상의” 남자가 구한 젤라틴캡슐(마취제)을 먹고 “예술적 몰입”을 하게 된 토니와 샐은 서로의 치부를 폭로하고, 그 녹음이 발목을 잡아 필릭스가 다시 예술감독 자리를 되찾게 된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끝나도 소설은 70여쪽이 남아있다.

에필로그 같은 마지막 대목에서 작가는 죄수와 배우와 필릭스의 입을 통해 ‘템페스트’ 속 인물 분석, 후속 편에 관한 아이디어들을 들려준다. 이 글 맨 처음의 질문 ‘왜 하필 ‘템페스트’였을까‘에 대한 대답도 나온다. 작가는 필릭스의 입을 빌어 말한다. “템페스트는 연극을 만드는 사람에 관한 연극이야.” 작가는 ‘마녀의 씨’ 칼리반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비튼 게 제일 마음에 든 듯 책 제목으로 삼았다. “내(프로스페로)가 네(칼리반) 아비”란 반전을 던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애트우드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작가님, 한국에는 막장 드라마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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