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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2016년 ○○대전

입력
2016.12.2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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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작년 이맘때쯤, 2015년의 세밑에서 나는 야심 차게 새해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아마 10년 전에도 똑같은 다짐을… 했을 것이다. 연말에 텅 비었다가 연초에 반짝 붐비는 헬스장 풍경이 시사하듯, 우리는 새해가 되면 다시 태어나거나 적어도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과오 없는 희망의 백지가 펼쳐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새해는 포장만 바뀌고 내용물은 그대로인 리뉴얼 과자에 가까우니, 어차피 3일 안에 파괴될 새해 다짐보다 한 해를 돌아보는 ‘셀프 시상식’을 추천한다. 영화나 연예계, 가요만 대전하라는 법 있나. 금메달 따려고 1인 대회도 개최하는 세상인데,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챙기는 2016 ○○대전은 ‘거국적’ 차원에서 권장해야 한다. 드레스도 레드 카펫도 필요 없다. ○○에 자기 이름만 넣으면 준비 완료.

상 종류나 이름은 마음대로 정하면 되지만, 어느 시상식이든 신인상이나 인기상 같은 필수 항목은 있는 법. 첫 번째는 단연 “베스트 생존상”이다. 필리버스터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 해에, 정부와 그에 기생한 부패 세력이 앞장서서 국민의 등골을 빼먹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2016년에, 장르 불문 재난과 위험이 산재한 ‘헬조선’에서 살아남았으니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자. 그 과정에서 앓거나 다치거나 좌절했음에도,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자로서 해야 할이 있기에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가 자신의 생을 열심히 추어 올려줘야 한다. ‘궁디 팡팡’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자기 자신에게 공급하자.

“다시 만난 세계상”은 신인상과 비슷하지만 수상자의 자격 제한이 없다. 올해 새로 만난 사람이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사상이나, 막연하던 것들을 선명하게 만들어준 개념어, 좁게는 평생 가고 싶은 식당 등 2016년에 내 인생에 처음 뛰어들어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질 수 있게 한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2016년 이전과는 또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고, 다시 만난 세계는 2017년으로 이어져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쫓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상”은 결의가 필요하다. 작심삼일과 비슷할 수 있지만 다른 개념으로, 한 해 자신의 과오 중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에 시상한다. 자신이 가해했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줬던 일을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의도와 달리’ 벌어진 일이라면 의도를 발라내고 행위는 떠내야 한다. 만약 의도적으로 저지른 잘못이라면 이 상의 트로피를 토템처럼 항상 품고 있다가,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싶을 때 허벅지를 냅다 찌르면 된다.

“해일 앞에 조개상”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싸운 성과나, 그런 투쟁에 앞장선 사람에게 시상하면 된다. 우리의 삶은 필연적으로 투쟁과 정치의 연속이고, 문제의 경중이나 대소 여부 때문에 지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휩쓸리거나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조개를 줍거나 그렇게 자신의 정치를 행하는 존재를 발견하는 경험은 나의 존엄을 반질반질하게 닦아놓는다. 이 상은 상금을 소액이라도 설정해서 후원 계좌에 보내도록 하자.

너무 추상적인 예시들만 있다고? 올해 가장 자주 먹었던 음식이나 많이 입었던 옷처럼 의식의 영역이면 스스로의 취향이나 건강을 점검할 수 있어 유익하다. 인상 깊었던 책, 음반, 영화, 뮤지컬 등을 뽑아서 느긋하게 다시 감상하거나 “인생템 상”, “예쁜 쓰레기상”, “장바구니 장기체류상”을 시상하며 1년간의 쇼핑 역사를 돌아보고, 연인과 “베스트 커플 상”을 함께 수상해도 좋다. 혼자 해도 여럿이 함께해도 재미있지만 억지로 사람들을 모으거나 원하지도 않는 파티에 참석할 필요는 없다. 수상자가 참여 안 하는 시상식도 수두룩하니, 수상자가 타인이더라도 부담 없이 대리 수상하면 된다. 그리고, 올 한 해가 드디어 끝이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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