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선영 기자

등록 : 2017.11.22 04:40
수정 : 2017.11.22 10:02

[좋은 이별] “넌 내 거야” 통제하려는 마음이 '이별 범죄'로

등록 : 2017.11.22 04:40
수정 : 2017.11.22 10:02

데이트폭력 가해자 77%가 남성

연애를 지배ㆍ소유관계로 인식

여성혐오 문화와 긴밀히 연관

SNS상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이별이 힘들고 거칠어지기도

“사랑의 방식은 결국 인격수준”

연인을 사랑과 이별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그릇된 대상화가 이별범죄를 낳는다. 사랑은 쌍방의 합의로만 가능하지만, 이별은 일방의 결정만으로도 효력이 발생한다. 한때 사랑했다고 해서 그 결정을 통제할 수는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결별을 통보한 여자친구(23)를 찾아가 성폭행 한 뒤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부모에게 이를 알리겠다고 협박한 남성(29)이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헤어진 연인(20)이 다른 남자와 만나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10대 소년(17)이 경찰에 검거됐다.’ ‘결별 통보를 받은 다음날 교제를 반대하는 여자친구의 엄마를 칼로 찌르고 달아난 고등학생(17)이 구속됐다.’ 지난 한 달간 언론에 보도된 이별범죄 뉴스들이다. 그 동안의 추억에 감사하고 서로의 앞날에 행복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이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보복당하지 않고 무사히 헤어지는 ‘안전이별’이 신조어로 널리 통용된 지 몇 해째. 제대로 사랑한 사람만이 제대로 이별할 수 있다지만, 이별이 이토록 추악하고 흉측해지는 이유는 뭘까.

이별범죄 가해자는 주로 남성

이별이라는 고통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차이고, 어떤 사람은 차는 것이다. 전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더 큰 고통-때로는 일방적으로 막대한 고통-은 종종 폭력의 형태로 분출되는데, 대개 남성에게서 그렇다.

경찰청의 2016년 데이트폭력 발생 및 검거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데이트폭력으로 형사입건된 사람은 총 8,367명(구속 449명)으로, 전년보다 8.8%나 늘었다. 이 중 남성이 77.6%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고, 여성이 5.3%, 쌍방이 17.1%였다. 범죄 유형별로는 폭행 및 상해가 69.2%로 가장 많았고, 체포 감금 협박이 13.1%, 살인 및 살인미수가 5.6%, 성폭력이 2.5%였다. 올 상반기만도 총 4,565명이 데이트폭력 피의자로 검거됐으며, 이중 살인 및 살인미수만 25건. 한 달에 네 명꼴로 연인에게 목숨을 잃을 뻔하거나 잃는 셈이다.

데이트폭력이 한때 이별범죄의 동의어로 쓰였을 정도로 이별통보가 폭력의 주요원인인 바, 경찰청이 밝힌 데이트폭력 주요 사건 사례에도 ‘피해자가 만남을 피한다는 이유로 주거지를 찾아가 과도를 목에 들이대거나 협박문자를 전송’, ‘피해자가 만남을 거부하자 직장으로 수 차례 찾아오고, 500여회에 걸쳐 문제메시지를 발송하여 불안감 조성’, ‘결별을 선언하자 데이트 비용 500만원을 돌려달라며 피해자의 가족을 납치, 감금’ 등의 사례가 적시돼 있다.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그릇된 욕구가 사랑을 범죄로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랑은 소유와 지배의 관계가 아니다

이별범죄가 주로 남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은 여성을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여성혐오 문화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여성을 사랑과 이별의 주체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이 같은 인식은 먼저 사귀자고 대시하는 것도 남성이요, 헤어지자고 통보할 수 있는 것도 남성이라는 믿음을 낳는다. 여성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데이트폭력을, 떠날 권리도 없다는 생각이 이별범죄를 유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 결별 통보는 이별의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실패한 이별의 윤리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사실은 여성혐오 문화가 데이트문화에 얼마나 지배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입증한다. 이별의 원인이 ‘우리의 다름’이나 ‘나의 못남’이 아니라 ‘너의 못됨’에 있다는 인식. 그것을 응징하는 것이 정당한 폭력이라는 그릇된 사고가 암암리에 퍼져 있는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애관계를 지배와 소유의 관계로 잘못 생각하게 되면 연인이 헤어지자고 했을 때 상실감, 박탈감이 굉장히 커진다”며 “여성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여성혐오 문화가 이별범죄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분노, 콤플렉스, 열등감을 관계에 투사해버리는 거죠. ‘너마저 나를 떠난단 말이냐’ 식으로 생각하니 상실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남자가 자살시도를 하거나 자해하는 식으로 자기 상실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굉장히 공격적으로 가고 있어요.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만드는 문화적 코드가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폭력과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연인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본능의 강력한 신호다. 게티이미지뱅크

통제하는 연애가 이별범죄로

사랑이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그릇된 연애관은 대중문화와 순수문화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유포된다. 신체적 폭력뿐 아니다. 비난과 욕설, 협박 같은 언어적ㆍ정서적 폭력, 원치 않는 성행위 등 성적 폭력도 사랑의 한 표현으로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 곧잘 묘사된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욕하고, 때리고, 성폭행하는 식의 서사가 오랜 세월 무분별하게 남발되다가 사회적 논란 속에 비판 받기 시작한 게 최근에 이르러서다.

친밀한 애착관계에 대한 갈구는 인간 본연의 욕구다. 하지만 이 욕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과시의 욕구도 커져 연인은 종종 소유대명사로 전락한다. ‘넌 내 거야’ 치기 어린 말장난에서부터 ‘짧은 치마 입지 마’, ‘남자 선배들이랑 술 마시지 마’ 같은 통제적 관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통제는 신체적, 언어적, 정서적, 성적 폭력에 더해 최근 들어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연인간 폭력 요소다.

손문숙 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는 “이별범죄의 가해자는 연애 초반부터 통제행동을 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폭력의 궁극적 목적은 통제”라고 강제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벽을 부수고, 자해소동을 벌이는 것도 연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한 통제의 욕구다. “너 없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것도 여성에게 자책을 불러일으켜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인 거죠. 연애 동안에는 언어적, 정서적인 폭력을 휘두르다가 연인이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결별을 선언하면 더 강한 신체적 폭력으로 통제를 강하하려는 겁니다.” 너무 사랑해서, 부재를 견딜 수 없어서라기보다 다시 통제권 하에 두기 위해서 자살 소동을 벌인다는 얘기다.

연인간 통제는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으로 쉽게 환원돼왔다. 하지만 통제는 단순히 폭력의 정의를 광의로 넓히는 요소가 아니라 모든 연인간 범죄를 관통하는 본질적 특징이다. 신경아 교수는 “통제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의 발로”라며 “연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걸 실현하겠다는 매우 이기적인 자기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간섭으로 시작해서 강압이 되고, 지배하려고 하다가 그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폭력이 행사됩니다. 여성학에서는 신체적인 폭력보다 친밀한 관계에서 강압이 있었느냐 여부로 폭력을 판단하죠. 과도한 개입이나 ‘어디 가는지 매시간 보고해’ 같은 강압이 있다면 이건 크게 보면 폭력이고, 작게 봐도 폭력을 예고하는 징후인 거죠.”

사랑은 한 인격의 표현이며, 자아의 탐구과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SNS가 만든 인정문화… 이별 더 힘들어져

일상의 매순간을 전시하고 평가 받는 소셜미디어의 세계 역시 이별을 더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의사결정과 가치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젊은 세대의 ‘ㅇㅈ문화’(인정문화)는 연인관계를 단지 두 사람 간의 배타적 관계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관계를 공인 받는 젊은 세대는 이 관계가 무너졌을 때 단지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가 연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이별이 더 힘들고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새로운 관계를 맺을 기회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고, 그런 만큼 이별도 더 많아졌죠. 하지만 어떻게 이별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어요. 어떤 이별이 올바른 이별이고, 어떤 게 이별의 에티켓인지 전혀 알지를 못하는 거죠.”

구 교수는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할 줄 알고, 상대방의 행동을 보며 그 원인을 이해하려 하고, 헤어질 때도 상황과 이유에 대해 잘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문화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별도 익히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행작가 김남희씨는 두 해 전 한국일보에 쓴 ‘안전이별’이라는 칼럼에서 “내 사랑은 내 인격보다 고매할 수 없다. 사랑의 방식은 결국 인격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랑은 자기의 탐구이며, 자아의 계발이다.

박선영 기자 arevoir@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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