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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금융 하랬다, 노조개혁 하랬다… 초점 없는 금융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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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금융 하랬다, 노조개혁 하랬다… 초점 없는 금융개혁

입력
2015.10.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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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최 부총리 등 윗선 발언 때 마다 과제 달라져 혼선

최, 페루선 영업관행까지 지적

"관치·낙하산 관행 고칠 생각 않고 정부의 개입만 늘어날 가능성"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앞장서 연일 금융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그때그때 주문 사항이 달라지면서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술금융, 규제완화, 핀테크, 노조개혁까지 시기마다 초점을 달리하면서 “도대체 금융개혁이 뭐냐”는 불만들이 터져 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모두 다 잘하자는 식의 접근은 자칫 더 큰 부작용이나 정부의 개입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2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한 데 이어 10일에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개혁이 사실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며 연일 금융개혁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개혁의 초점은 발언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작년부터 금융개혁을 언급한 박 대통령은 초반엔 주로 금융권의 보신적 행태를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과제가 담보 대신 기술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기술금융(또는 창조금융)이다. 해외 소비자들의 ‘역(逆)직구’가 어렵다는 얘기가 퍼지자, “액티브X 같은 낡은 규제”를 언급하며 규제완화와 핀테크 육성을 강조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되짚어보면 박 대통령이 처음엔 금융사나 관료의 ‘갑(甲)질’ 행태가 불만이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주문 사항은 이후 부쩍 다양해진다. 하루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금융산업 자체의 발전을 강조하고, 다음엔 벤처창업기업의 성장과 자금회수를 돕는 자본시장 생태계 조성을 역설하는 식이다. 4대 개혁의 마지막 과제로 금융을 꺼내든 지난주 수석비서관 회의에선 “금융개혁은 담보가 아닌 기술평가를 통해, 그것도 IT 기법으로 경제에 피(자금)를 공급하는 것”이라며 “이걸 하라는 게 금융개혁이고 그래서 기술금융, 핀테크, 금융감독 개선을 실천 목표로 추진 중”이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경제팀 수장인 최경환 부총리는 여기에 금융권 노조 개혁이란 새 과제를 더했다. 10일 페루 출장 중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노측의 힘이 너무 강해 금융개혁이 역동성을 확보 못하고 있다”며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금융사가 전세계에 어디있냐.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일 안 하는 사람이 많다” 등 영업ㆍ임금 관행까지 지적했다.

금융개혁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이런 윗선의 지적이 나올 때마다 금융개혁 과제를 추가하기 바쁘다. 금융위가 밝힌 ‘하반기 금융개혁 추진방향’만 봐도 ▦담보, 보증 등 보신주의 관행을 개선한 혁신적 자금중개기능 강화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춘 자본 공급ㆍ회수 선순환 구조 구축 ▦핀테크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ㆍ부가가치 창출 등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최 부총리의 지적을 감안하면, 이제는 여기에 금융사 영업시간과 임금체계 개편까지 과제에 추가될 판이다.

이를 바라보는 금융권은 짜증 섞인 표정이 역력하다. 한 금융사 CEO는 “저금리로 영업환경은 열악한데 하라는 건 끝이 없다. 때마다 강조 사항이 달라지니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 임원은 “관행을 바꾸는 건 자율적 의지와 공감대가 우선인데, 가장 먼저 자율을 가로막는 관치와 낙하산 인사 관행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고 비꼬았다. 심지어 금융당국 내부에서조차 “잘하라는 취지는 알겠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모든 과제에 성과를 내긴 어렵다”는 소리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지난 10일 페루 출장 중 기자들과 만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고객자산 보호가 우선인 은행권의 보수적 경영은 결코 보신주의가 아니다”며 “금융개혁의 대상은 은행보다 자본시장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포럼(WEF)의 금융 경쟁력 순위를 잣대로 들이밀면서 혼란을 더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점이 불명확한 개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정밀한 평가에 기반한 기술력 대출은 늘려야 하겠지만 당국 주도 아래 캠페인식으로 실적을 늘리다보면 가뜩이나 위험수위인 대출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현 상황의 금융개혁은 오히려 건전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창균 교수는 “대표적 규제산업인 금융은 당국의 의지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챙기라는 식의 정책은 자칫 개혁 성과 대신 정부의 개입만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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